“MB없다”와 시장선거에 나선 고대생

이번 재보궐선거에서 여당이 고전하고 있다. 서울과 부산 시장이 성추문으로 물러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LH공사 직원의 투기의혹에서 시작된 부동산 문제가 일파만파로 퍼지며 선거를 뒤덮고 있다. 공약은 눈에 띄지 않고 여야 세력의 힘겨루기만 보인다.

지난 주부터 광역시장 후보의 언행을 지켜보면서 많은 생각이 든다. 사실관계가 어떠한지를 시시콜콜 따지고 싶지는 않다. 어차피 선거가 끝난 뒤 재판으로 가려질 것같다. 하필 유력한 후보 세 명이 고대를 졸업했다는 점이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박형준·오세훈에게 이명박이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MB 없다”

고대와 연대의 응원전에서 벌어졌다는 우스개소리다.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피겨스케이트 금메달을 목에 건 김연아가 국민영웅이 되었다. 이명박 정권 시절이다. 고대쪽에서 “우리는 연아 있다”라며 뻐기자, 연대쪽에서는 “우리는 MB 없다”라고 응수했댄다. 연아가 우아하게 벌어놓은 것을 명박이가 까먹는 것으로도 부족해 빚더미를 잔뜩 남겨놓은 셈이다.

“DAS는 누구겁니까?”의 주인공 이명박 은 2007년 한나라당 경선에서 “도곡동 땅이 어떻다고요? BBK 의혹이 어떻다고요? 새빨간 거짓말입니다”라고 했고, “온갖 음해에 시달렸습니다.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것 아시죠?”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11년 뒤 그 말이 새빨간 거짓말이 되어 이씨를 감옥에 쳐넣었다. 기업인으로서 회사를 망치고, 4대강 사업, 자원외교, 공작정치 등으로 나라를 망치고, 그리고 아귀餓鬼처럼 사리사욕만 탐하다 인간을 망쳤다. 이씨에게 빌붙어 호의호식했던 이상득, 최시중, 원세훈 등이 감옥으로 끌려갔고, 김희중, 김백준, 김성우 등 측근들이 배신하고 그의 목을 졸랐다. 이씨에게 줄을 댔던 “고대생”(천신일, 이학수, 이팔성, 김우룡, 김재철 등)들이 줄줄이 검찰에 불려갔다. 모교의 얼굴에 똥칠을 했다. 선량한 교우校友들이 공공의 적으로 몰려 악몽을 꾸었다.

박형준과 오세훈과 이명박

박형준과 오세훈은 이명박의 판박이다. 고대 졸업생이면서 끊임없이 부와 잇속을 탐하다 꼬리를 잡혔다. 도곡동 땅과 엘시티 아파트를 비롯한 여러가지 부동산 의혹을 받았다. 부적절한 공직자의 처신으로 도마에 올랐다. 거짓말로 세상을 속이려다 낭패를 보게 생겼다. 이명박 정권에서 박씨는 청와대 민정수석을, 오씨는 서울시장을 맡았다. 박씨가 이씨를 대통령으로, 오씨를 서울시장으로 적극적으로 밀었다. 이씨는 1964년 한일국교정상화 반대와 “샐러리맨 신화”로, 박씨는 학생운동권과 민중당과 동아대 교수로, 오씨는 민변과 환경운동연합 경력으로 화려하게 등장했지만 모두 수구세력의 기수로 변신하였다. <이솝우화>에서 악한 강자는 위장하고 교묘한 말을 하여 약자를 속인다고 했다(2001: 138-139).

박씨는 민정수석시절 국정원의 민간인 사찰문건을 본적도 들은 적도 없다고 했다. 지시한 적도 관여한 적도 없다고 했다. 이미 국정원의 사찰문서 배포처에 민정수석이 들어있음이 확인된 상황이다. JTBC의 썰전 231회(2017년 8월)에 출연한 박씨는 국정원이 민간인 댓글부대를 운용한 사실을 알았냐는 유시민씨의 질문에 대해 당시 국정원의 사이버 심리전단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다고 했다. [알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단두대로 가겠다고 못을 박았다.

오씨도 배우자의 도곡동 토지에 대해 존재도 위치도 몰랐다고 했다. 개발제한구역 해제와 토지보상은 주택국장이 결정했다는 것이다. 토지측량을 나온 국토정보공사 팀장, 경작인, 식당 주인 모두 틀림없이 오씨가 왔다고 증언했다. 당시 유명인사였던 오씨가 백바지에 선글라스를 쓰고 온 것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오씨는 입회사실을 부정하면서도 측량문서에 서명한 사람, 경작인의 계약 요구, 입회했다는 처남의 행적 등을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이 이 일에 관여했다는 증언이 나오면 후보를 사퇴하고, 땅으로 이익을 봤다면 정계를 은퇴하겠다고 배수진을 쳤다.

이명박씨도 2000년 자신이 BBK를 설립했다고 말한 동영상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잡아뗐다. 2007년 대선 당시 자신이 BBK 소유주라면, 주가조작에 가담했다면 대통령이 되어서라도 무한책임을 지겠다고 했다. 이씨와 박씨와 오씨의 화법이 똑같다. 사실과 증거로 다투는 것이 아니라 벼랑 끝 패를 들이밀어 위기를 모면하려는 술책이다. BBK관련 의혹이 드러나면 어차피 대통령 노릇을 못하는 것이고, 민간인 사찰을 알았다면 감옥에 가야 할 것이고, 도곡동 땅을 알았다면 시장자리는 물건너 간 것이 아닌가. 손해볼 것이 전혀 없는 일을 마치 양보라도 하듯이 교묘하게 말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일단은 목적을 달성해놓고 보려는 사기꾼의 수법이다.

시장선거에 나선 고대생의 궁상

소정 선생님은 종종 <논어論語> 학이편學而篇에 나오는 교언영색선의인巧言令色鮮矣仁을 언급하시면서 말을 교묘하게 하고 생김새만 번지르르한 사람을 경계하셨다. 자신이 불리할 때는 숨어 있다가 무섭지 않을 때 기어나와서 이말 저말을 늘어놓으면서 잇속을 챙기는 이를 싫어하셨다. 남자가 성실하고 경우가 바르기보다는 친절하기만 하면 위선자일 뿐 좋은 배필이 되지 못한다고 했다(2001: 103).

불행하게도 이씨(경영학), 박씨(사회학), 오씨(법학) 모두 위장과 변신에 능한 “고대생”인 것같다. 사실을 분명히 밝히지 않고, 말을 바꾸거나 교묘한 말로 헷갈리게 한다. 기억 앞에서 겸손하라니… 마음 속에 땅이 자리하지 않다니… 본성이 드러날까 전전긍긍하는 속내다. 명명백백한 증거와 증언이 나온다 해도 절대로 인정하지 않을 태세다. 또한 이씨(배우자), 박씨, 오씨 모두 인물이나 언변에서 빠지지 않는다. 특히 박씨는 학식과 경험을 달변으로 그럴듯하게 풀어내는 솜씨가 있다. 사람을 속이고 말을 바꾸어 약속을 어기면서도 당당할 수 있는 재주다. 꾀병으로라도 감옥에서 벗어나려 용쓰고, 아이들 무상급식을 복불복에 걸고, 호화 아파트 의혹을 개인신상이라며 덮으려는 태도에서 고대생다운 당당함이 없다.

부산시장 후보로 나선 김영춘(정치외교학)은 세 사람과 반대편에 서 있다. 학생운동이나 진보를 배신하지 않고 소신을 지켜왔다. 눌변에 가까와 토론에서 박씨에게 많이 밀리는 모양새다. 하지만 서울에 아파트 한 채를 가진 것이 비난받을 정도로 특별한 비리는 없어 보인다. 해양수산부 장관을 역임하여 좋은 평가를 받았으나 이번 선거에서 예기치 못한 부동산 바람에 휩쓸리고 있다. 친절하지는 못해도 성실하고 경우 바른 고대생이 우직하게 고난을 헤쳐가고 있다.

굽은 것을 펴는 고대생이길

소정선생님은 “눌린 자들 쳐들기에 굽은 것 펴기에 쓰리로다 부리리라”라는 고대의 옛교가를 더 좋아하셨다. 누가 바른 것을 눌러 굽힌 자이고 누가 굽은 것을 펼 자인가. 주택국장이 전결했다고 둘러대고 민정수석실로 보내진 사찰문건을 알지 못한다는 자가 굽은 것을 펼 수 있을까. 또다시 교우들이 시민들 앞에서 고개를 들고 다니지 못하는 수모를 당하지 않았으면 한다.

악한 강자는 백성에게 아첨이나 구걸을 해서라도 권력을 얻은 뒤 백성을 해친다 (2001: 139). 사기꾼의 눈속임·말속임에 넘어가 곡간열쇠를 맡기는 우를 되풀이해선 안된다. 분위기에 휘둘리지 말고 사실과 거짓말을 냉철하게 따져 심판해야 한다. 

인용하기: 박헌명. 2021. “MB없다”와 시장선거에 나선 고대생. <최소주의행정학> 6(4): 2.

부동산으로 흥한 선거 부동산으로 망하나

4월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여야가 사생결단이다. 문재인 정부를 전체주의 독재로 낙인찍은 수구기득권 세력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다가 드디어 LH공사 비리를 계기로 파상공세를 시작했다. 예민한 부동산 문제를 물고 늘어지면서 선거판을 휩쓸고 있다. 한 쪽에서는 보유세가 별것 아니라며 “영끌”이니 “패닉바잉”을 부추기면서 다른 쪽에서는 세금폭탄이라며 사회주의를 운운하는 자들이다. 어쩌면 이번 선거는 부동산에서 시작해서 부동산으로 끝날 것같다. 부동산으로 흥한 선거 부동산으로 망하는가.

공직 후보의 무책임한 말잔치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오세훈씨는 부인이 소유했던 도곡동 토지에 대해 위치도 존재도 몰랐다고 했다. 수억대 토지보상을 받았으면서도 손해를 봤댄다. 이명박 정권에서 개발제한구역을 해제하고 보금자리주택지구를 지정한 것은 주택국장 전결사항이라 자신은 알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전결 얘기를 듣자마자 실소가 나왔다. 행정절차상 전결사항이라 해도 시장이 몰랐다고 말하다니… 23만평이나 되는 택지에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뒤얽힌 사안이 아닌가. 부서의 주요한 일은 사후에라도 상급자에게 보고하고 설명하는 것은 상식이다. 국장이 시장의 권위를 빌어 일을 하지만 그 책임은 시장의 몫이다. 전결을 했든 안했든 시장이 꼼꼼하게 살펴야 하고 필요하면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전결사항을 정말 몰랐다면 한마디로 무능하고 무책임한 상급자다. 어찌 그리 천연덕스럽게 몰랐다고 말할 수 있는지… 다 주택국장의 책임이니 나에게 묻지 말라는 소리인가?

땅의 위치도 존재도 몰랐다는 말은 거짓임이 분명하다. 오씨는 국회의원과 서울시장에 당선된 뒤 도곡동 110번지와 106번지를 배우자의 재산으로 신고했다. 2005년 택지개발용역이 시작되기 직전 오씨가 백바지에 선글라스를 쓰고 와서 처가 식구들과 토지측량을 입회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토지를 측량한 팀장과 직접 말뚝을 박았다는 경작인이다. 그럼에도 오씨는 토지측량 보고서에 장인이 서명했으니 자신이 현장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고 했다. 또 “기억 앞에서는 겸손해야 한다”며 어물쩍 뭉개고 있다. 누군가 자신이 압력을 가했다고 나서면 바로 후보를 사퇴한댄다. 땅으로 이익을 봤다면 정계를 은퇴한댄다. 자신의 양심문제에 웬 조건을 거는가. 자기관리와 자기책임에 게으른 사람이다.

부산시장 후보로 나선 박형준씨도 이명박 정권에서 4대강 사업을 반대한 사람들을 사찰한 국정원의 문서를 받지 못했다고 했다. 문서에 청와대 홍보기획관의 요청사항이라고 적혀있고, 14건은 배포선에 민정수석을 포함하고 있었다. 당시 홍보기획관이었고 민정수석이었던 박씨는 불법사찰을 알지도 듣지도 못했다고 했다. 배포선에 넣으면 우편물처럼 가게 되어있다는 임태희 전비서실장의 발언이 무색해진다.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원세훈의 국정원이 제멋대로 문서를 생산해서 아무렇게나 배포했다는 것인가? 민정수석이면 보고를 받지 못했다 해도 입소문이 난 일을 잘 살펴서 잘못된 일을 바로잡았어야 했다.

배우자와 그 딸이 홍익대학교를 찾아가 울면서 미대입학을 청탁했고, 민정수석이던 박씨가 외압을 넣어 입시비리 검찰수사를 덮었다는 의혹도 제기되었다. 박씨는 딸이 당시 런던예술대학을 다녔는데, 입학시험을 보지도 않았고 홍대 근처에도 안갔다고 해명했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실기시험 점수를 올려주었다고 고백한 김승연 전 미대교수를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고발하였다. 어느 쪽이 사실인지 쉽게 밝힐 수 있는 일을 논박하는 모습이 우습다. 홍대가 박씨 딸이 시험을 쳤는지를 밝히면 되는 일 아닌가? 진실을 알고 있는 학교나 검찰에서 침묵하고 있으니 난감하다.

엘시티 아파트와 동경 아파트

박씨 부인 명의로 된 해운대 엘시티 아파트도 공방중이다. 2005년 배우자의 아들과 딸이 하필 분양계약 첫날에 아래위층(17-18층) 분양권을 구했댄다. 자녀가 모친과 친분이 있던 중개인을 우연히 만났고 마침 분양권을 팔려는 사람을 만나서 복비도 주지 않고 계약서를 썼댄다. 참으로 기묘한 우연이고, 112평 아파트를 구입한 자녀의 재력이 놀랍다. 지난해 부인이 아들에게 웃돈 1억원을 주고 아파트를 구입했는데, 1년만에 가격이 20억에서 35억으로 올랐댄다. 그런데 엘씨티에 18억원 조형물을 납품한 회사의 대표이사가 박씨의 아들이라고 한다. 부산의 복마전을 상징하는 엘시티처럼 박씨의 아파트 의혹은 쉽게 해소될 것같지 않다.

이에 수구야당은 부산시장 후보 김영춘씨가 서울에 아파트를 가지고 있고, 서울시장 후보 박영선씨의 남편이 동경에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다며 군불을 지폈다. 박씨가 BBK로 이명박씨를 집요하게 몰아붙인 탓에 남편은 일본으로 사실상 쫓겨갔고, 지난 2월 아파트를 처분했다고 해명했다. 10억원정도의 20평 아파트란다. 과연 얼마나 많은 차액을 벌었을까? 디플레이션을 걱정하는 일본에서 가격상승을 노리고 아파트에 투자했다면 어리석다. 휴양지에서도 비싼 공과금을 버티지 못해 공짜로 부동산회사에 넘기는 판이다. 박씨 남편이 동경의 부동산 물정에 밝았다면, 큰 수익도 없이 번거로운 매매보다 임대를 선택했을 것이다. 게다가 동경에서 20평이면 평균치일 뿐 엘시티의 호화로움과는 거리가 멀다.

깨어있는 시민의 지혜와 실천이 필요하다

여론조사는 민주당 후보가 서울과 부산에서 야당 후보에게 두 자리수 차이로 밀리는 것으로 나왔다. 성난 민심의 반영이라지만 과하다. 대다수 방송과 신문은 수구세력에 기울어져 있다. LH공사를 비롯한 공무원의 부동산 투기 보도는 넘치지만 유력한 야당 후보에게 쏟아진 부동산 의혹은 가뭄에 콩나듯 하다. 후보 단일화와 상호 난타전을 전할 뿐 이성과 상식에 근거한 분석과 토론은 찾아보기 어렵다. 우격다짐같은 “백날토론”을 할 뿐이다. 사실관계를 묻는 질문은 “네가티브”라고 깎아내린다. 수구기득권의 힘이 선거판을 움직이고 있다. 만일 오세훈이나 박형준이 조국이나 추미애였다면 벌써 3족이 난도질을 당했을 것이다. 깨어있는 시민의 냉철한 판단과 굳건한 믿음과 불굴의 용기가 필요한 때다. 

인용하기: 박헌명. 2021. 부동산으로 흥한 선거 부동산으로 망하나. <최소주의행정학> 6(4): 1.

윤석열 검찰총장의 사퇴와 공직자의 자세

윤석열 검찰총장이 사직했다. “이 나라를 지탱해온 헙법 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파괴되고 있습니다. 그 피해는 오로지 국민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저는 우리 사회가 오랜 세월 쌓아올린 상식과 정의가 무너지는 것을 더 이상 지켜보고 있기 어렵습니다.” 수많은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또박또박 사퇴의 변을 찍어내는 윤총장의 모습에 비장함이 서려있다. “어떤 위치에 있든지 자유민주주의와 국민을 보호하는데 온 힘”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반독재 투사의 절규인가? 대통령 선거에 나선 유력 후보의 사자후인가?

공무원인가? 정치인인가?

윤씨는 지난 2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꾸준히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온 우리 사회가 퇴보하고 헌법 가치가 부정되는 위기 상황”이라며, “[중대범죄수사청 설치는] 검찰을 흔드는 정도가 아니라 폐지하려는 시도다. 갖은 압력에도 검찰이 굽히지 않으니 칼을 빼앗고 쫓아내려 한다. 원칙대로 뚜벅뚜벅 길을 걸으니 아예 포크레인을 끌어와 길을 파내려 하는 격이다. 거악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보다 공소유지 변호사들로 정부법무공단 같은 조직을 만들자는 것인데, … 입법이 이뤄지면 치외법권의 영역은 확대될 것이다. 보통 시민들은 크게 위축되고 자유와 권리를 제대로 주장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중수청 설치를 검찰 폐지로 보고 잔뜩 뿔이 난 자의 푸념으로 들린다.

“이 검찰을 지탱해온 헙법 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파괴되고 있습니다. 그 피해는 오로지 검사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저는 우리 검찰이 오랜 세월 쌓아올린 반칙과 특권이 무너지는 것을 더 이상 지켜보고 있기 어렵습니다. … 어떤 위치에 있든지 검찰지상주의와 검사의 기득권을 보호하는데 온 힘을 다하겠습니다.”

어제는 대구고등검찰청을 방문한 자리에서 “지금 진행중인 …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 박탈)이라고 하는 것은 부패를 완전히 판치게 하는 ‘부패완판’으로서 헌법정신에 크게 위배되는 것이고 국가와 정부의 헌법상 책무를 저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권영진 대구시장이 꽃다발을 건네며 마중을 나왔고, 많은 지지자들이 윤씨를 연호했다. 공무원이 아닌 개선 장군이나 대선 후보에 걸맞는 위엄이었다.

문재인 정권에서 검찰총장으로 임명된 뒤 여권과 갈등을 빚다가 하차한 윤석열씨는 김영삼 정권에서 감사원장과 국무총리로 발탁되었지만 대쪽같은 행보로 좌충우돌하다 사표를 내던졌던 이회창씨에 비견된다. 윤씨와 이씨는 권력자에 맞서는 거침없는 행보로 대중의 지지를 받았다. 수구세력의 부름을 받고 대선 후보가 된 이씨처럼 윤씨도 지리멸렬支離滅裂인 수구야당의 대선 후보로 우뚝 서는 꿈을 꾸고 있는가? 시시비비와는 별개로 지금 이 순간 윤씨는 공무원에서 정치인으로 환골탈태換骨奪胎하고 있다. 숨길 수 없는 욕망의 분출이다.

열혈 공무원 윤석열의 길

윤씨가 직분에 충실한 공무원이었다면 어떤 길을 선택했을까? 윤씨도 검사에 취임할 때 “나는 … 공익의 대표자로서 정의와 인권을 바로 세우고 범죄로부터 내 이웃과 공동체를 지키라는 막중한 사명을 부여받은 것입니다. … 불의의 어둠을 걷어내는 용기 있는 검사,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따뜻한 검사, 오로지 진실만을 따라가는 공평한 검사, 스스로에게 더 엄격한 바른 검사로서, 처음부터 끝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국민을 섬기고 국가에 봉사할 것을 나의 명예를 걸고 굳게 다짐합니다”라고 선서했을 것이다.

윤씨가 현재 상황을 헌법가치가 부정되고 민주주의가 퇴보하고 정부가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고 인식했다면 그 결기를 행동으로 보여주었어야 했다. 조직이든 인맥이든 법기술이든 모든 화력을 집중하여 반란세력을 진압했을 것이다. 부하검사를 사방팔방 풀어 사돈의 팔촌까지 탈탈 털어 죄를 그리고 판을 짰을 것이다. 국회의원이든 장관이든 총리든 대통령이든 굴비엮듯이 끌고가서 물고를 냈을 것이다. 진압작전에 협조하지 않는 불순무리들은 경찰이든 법관이든 학자든 언론인이든 정치인이든 종교인이든 잡기술을 걸어서라도 기어코 자빠뜨렸을 것이다. 한 나라의 총리를 파렴치한 범죄인으로 만든 솜씨가 어디 가겠는가? 이 나라가 망하고 검찰이 무너지는 판에 못할 짓이 무엇인가? 나라가 곧 검찰이고 정의가 곧 검찰인데… 게다가 현재 검찰이 가진 권능과 기개는 군사반란 수괴인 박정희와 전두환의 무력과 용맹에 못지 않다.

윤씨의 구국 운동이 설령 실패로 돌아간다 해도 후회는 없을 것이다. 윗사람을 들이받고 꼬마 검사들을 달고 다니던 낭만 칼잡이 아닌가. 검찰공화국의 헌법이 무너지는 판에 두목인 총장이 모른체 하거나 도망갔다면 열혈 윤석열은 끝장났을 것이다. 식구들까지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해도 멋있게 한 판 뜨고 칼을 맞는 것이 낫다. 끝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불의와 범죄에 맞섰다는 자부심, 정의와 인권을 바로 세움으로써 국가에 봉사했다는 명예를 믿기 때문이다. 역사가 자신의 결백과 고뇌와 용기와 희생을 기록해주리라… 국민도 헌법도 검찰도 아닌 그냥 “자뻑”일 뿐이다.

공직자의 올바른 자세

윤씨는 결국 칼을 버리고 사직서를 던졌다. 민주주의 퇴보와 헌법 파괴는 수사일 뿐 사실은 검찰 수호를 명분으로 개인의 탐욕을 불사른 것이다. 정치권에게는 검찰을 건드리지 말라면서 스스로 정치질에 푹 빠진 정치 검찰의 민낯이다. 5년 만에 완전한 민주주의국으로 복귀한 마당에 무슨 헌법 타령인가. 중정과 안기부의 설계인지 윤씨의 항의성 사퇴는 모양새도 좋고 시기도 절묘했다.

윤씨가 올바른 공직자라면 임명권자와 입법부에 대하여 과격한 발언을 하지 않는다. 정말 헌법상 책무를 저버렸다거나 갖은 압력을 넣어 검찰의 정치 중립을 훼손했다면 절차에 따라 부당함을 밝힌다. 여의치 않으면 법에 따라 수사하고 기소하면 된다. 국회에 의견을 전달하고 묵묵히 입법사항을 집행하면 된다. 진실만을 쫓는 공평한 검사라면 자신이 곧 진리가 아니라 언제든 실수를 범할 수 있는 인간임을 겸허하게 인정한다. 상급자와 뜻이 다르다면 조용히 물러날 뿐 날세워 비난하거나 구차하게 변명하지 않는다. 

같이 읽기

인용하기: 박헌명. 2021. 윤석열 검찰총장의 사퇴와 공직자의 자세. <최소주의행정학> 6(3): 1.

비상식 수사·기소·판결을 처벌하라

요즘 언론에 오르내리는 사건에서 검사의 수사·기소와 판사의 판결이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지난 21일 검찰은 김학의씨의 출국금지과정에 문제가 있다면서 법무부를 압수수색했다. 이른바 “별장 성접대”의 주인공인 김씨가 재수사를 앞둔 2019년 3월 인천공항을 통해 도망가려다가 들통난 사건이다. 당시 김씨 본인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던 일을 2년 가까이 묵혀두었다가 느닷없이 꺼내 대놓고 소동을 벌이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럼 탈출하는 줄을 알면서도 내버려두었어야 했나? 그물망을 넓혀 범죄사실로 엮어낸다면 누가 덕을 보고 누가 다칠 것인가? 일반 시민의 출국금지절차에 흠이 있다 해도 이렇게 전방위로 뒤질것인가?

김학의, 최강욱, 정경심의 희비

지난 달 28일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가 업무방해로 1심에서 징역 8개월형을 받았다. 조국 전장관의 아들에게 허위 인턴증명서를 발급해 줬다는 혐의다. 검찰은 지난해 1월 23일 윤석열 검찰총장의 지시로 피의자 조사도 없이 최대표를 기소했다. 10월 15일에는 공직선거법 위반(허위사실 공표) 공소시효를 4시간 앞두고 또 불구속 기소했다. 같은 사안을 가지고 이리 걸고 저리 건 셈이다. 깡패의 보복이 이런 것이다.

1심 판사는 조장관의 아들이 체험활동을 했지만 9개월 간 16시간은 인턴활동으로 보기 어렵댄다. 따라서 인턴 증명서는 허위랜다. 술접대를 받은 금액을 96만원으로 계산한 검사의 꼼꼼함에 비견된다. 누가 16시간을 따져 인턴과 체험활동을 구분하는가? 어느 입시사정관이 인턴 증명서를 보고 당락을 결정하는가? 설령 증명서가 허위라 해도 징역 8개월이 합당한가? 최대표가 아닌 일반 시민이 똑같은 혐의를 받는다 해도 똑같이 기소하고 판결할 것인가?

조장관의 배우자인 정경심씨는 남편의 청문회가 열리는 동안 전격 기소되었다. 피의자 조사도 없었다. 출발점인 사모펀드에 관련된 죄는 어디 가고 자잘한 입시비리만 남았다. 검찰은 공소장대로 표창장 위조를 증명하지 못했지만 판사는 정씨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하고 구속했다. 반면 검찰은 자녀입시비리와 관련되어 고발되었던 나경원씨의 고소·고발 13건을 불기소처분했다. 75억대 횡령·배임으로 기소된 홍문종씨는 징역4년을 받고도 구속되지 않았다. 탈탈 털린 정씨는 증거인멸 우려가 있고 체포동의안 부결로 버틴 홍씨는 도망갈 우려가 없댄다. 어찌하여 법의 칼날은 정씨에게는 그리도 야박하게 굴고 적폐청산을 반대한 나씨와 홍씨에게는 그리도 관대하단 말인가?

공소장과 판결문으로 말한다?

흔히 검사는 공소장으로 말하고 판사는 판결문으로 말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 “말”을 납득할 수 없으니 난감하다. 검사는 조사권과 기소권으로 흥정하고 판사는 재판권으로 기분내는 것은 아닐까? 국민의 검사임을 믿어달라지만 오해를 살만한 언행을 하지 않으면 된다. 법원의 판결을 존중해달라고 말하지만 존중받을 만한 판결을 내리면 그만이다. 자신의 판단이 곧 진리가 아님을 겸허히 인정해야 한다. 공정과 균형을 잃은 법적용은 그 자체로 흉기다.

김학의의 출국금지절차를 따지려고 법무부를 뒤엎었다면 생생한 성접대 동영상을 보고도 두 차례나 불기소한 검사들은 눈알이라도 뽑았어야 했다. 그 눈뜬 장님들에게 불기소라니 누가 불편부당이라 말할 것인가? 표창장을 위조했다며 조씨의 부인을 홀딱 발랐다면 수백억대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윤총장의 처가는 쑥대밭으로 만들었어야 했다. 표창장을 위조했다는 정씨가 4년이라면 86억 뇌물을 건네 박근혜의 국정농단을 후원한 이재용은 최소한 40년은 받았어야 했다. 2년 6개월이라니 터무니없다. 헐값에 죄를 끊어준 것이다. 유전무죄다.

국민의 상식이 헌법이다

검사는 정의를 실현하고 인권을 수호한다고 했다. 법관은 법과 양심에 따라 심판한다고 했다. 법은 시민의 상식을 표현한 것이고 양심은 그 상식을 느끼는 것이다. 법리라는 것도 그 상식을 뛰어넘을 수 없다. 검사와 판사의 결정에 의문을 갖는 것은 그들의 법적용이 국민의 상식과 거리가 있다는 뜻이다. 또 그들의 양심이란 것이 국민의 정서와 다르다는 뜻이다. 제식구 감싸기와 전관예우는 그들만의 미풍양속이다. 정치중립과 독립성을 내팽개치고 법기술을 날세워 휘두르는 그들의 비양심이다. 이런 검사와 판사의 비위를 건드렸다가는 부처님도 공자님도 목숨을 건지기 어렵다.

검찰과 법원의 자정自淨이 불가능하다면 불량품을 솎아내야 한다. 비상식 수사·기소·판결에 대하여 퇴임 후에도 권한에 비례하여 철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항상 감시하고 따지고 처벌해야 한다. 또 “영감”들의 직급을 낮추고 고위직은 선거나 공채로 임명했으면 한다. 그래봤자 국민의 머슴임을 뼈속 깊이 새기도록 해야 한다. 

인용하기: 박헌명. 2021. 비상식 수사·기소·판결을 처벌하라. <최소주의행정학> 6(2): 2.

방역이란 공공재는 공동체가 만든다

한국은행은 26일 지난 해 실질국내총생산(GDP)이 1%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수구언론은 일제히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역성장을 했다고 제목을 달았다. 엄청난 재앙이나 실정이 일어난 느낌이다. 역시나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허무맹랑한 짓이었다는 평을 덧붙였다. 지난 해 거의 모든 나라가 COVID-19로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는 사실은 비껴간다. 한국보다 재정을 몇 곱절 쏟아붓고도 역성장 폭이 더 큰 나라 얘기는 얼버무린다. IMF 추정치로 말하자면 미국은 세계 평균에 가까운 -4%, 일본은 -5%, 영국은 -10%이다. 도대체 뭐가 불만일까? 문재인 독재정권이 폭주하고 소득주도성장이 실패했다고 몰아붙였는데 결과는 정반대로 나온 것이 화나고 당혹스러운 것일까?

이 나라가 기재부 나라냐?

정치권이 추진하고 있는 COVID-19 손실보상제도에 대해 기획재정부 관료들이 난색을 표하거나 미적거리자 국무총리가 21일 중앙재난안전대책회의에서 “이 나라가 기재부 나라냐?”고 일갈했다. 홍남기 장관은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며, 국가채무가 빠르게 늘어가고 있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랏빚을 걱정하고 재정건전성을 따져야 하는 곡간지기의 입장이다. 수구야당은 손실보상에 반대하지 않지만 선거에 이용하면 안된다는 입장이다. 제도화보다는 대통령의 긴급명령으로 선거 전에 빨리 지급하거나 한참 지나서 연말 쯤 추진하랜다. 전 국민에게 넓게 지원할 지, 피해가 심한 국민들에게 두텁게 지원할지, 작년까지 소급해서 지원할 지를 두고 옥신각신 하고 있다. 돈을 쓰려는 자와 돈을 쥐고 지키려는 자의 시각과 논리와 이해가 서로 엇갈리고 있다(Boardman, Vining, & Waters, 1993). 이러한 논란 속에 지난 1년 동안 방역에 동참하느라 생업이 망가지고 일상이 어그러진 서민들의 시름은 하루하루 깊어만 간다.

방역상식과 시민의식이 판을 갈랐다

우리나라가 다른 선진국보다 COVID-19와 경제 위기에서 선방했다. 이른바 K-방역의 성과다. 정부는 과학과 전문가의 의견에 따라 치밀하고 과감하고 전략적으로 대처했다. 상식에서 벗어난 정치인의 선호와 이해에 따라 방역이 흔들리지 않았다. 강제성이 지나치고 개인정보(위치나 거래 정보)를 과도하게 사용한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방역과 경제의 균형을 지향한 덕분에 국경이나 도시를 폐쇄하는 극단적인 상황을 피할 수 있었다. 또한 대다수 시민들이 정부의 방역지침을 적극적으로 따랐다. 스스로 가게와 골목을 소독하고 쓸고 닦았다. 서로를 위해 마스크를 쓰고 개인간 거리를 지켰다. 산발적 일탈은 있었지만 마스크를 쓰기 싫다며 집단으로 난동을 부리지 않았다. 중국에서 탈출한 교민들이 격리시설에 수용되었을 때도 심각한 충돌을 벌어지지 않았다.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백성이 나섰던 것처럼 이번에도 공동체와 이웃을 지키려는 시민의식이 빛을 발했다. 우리 공동체의 소중한 전통이자 자산이다.

방역이란 공공재는 공동체가 만든다

전염병과 싸우는 방역防疫은 공공재(public goods)다. 적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는 국방과 마찬가지다. 누가 혜택을 독점할 수도, 누구를 배재할 수도 없다. 방역이나 국방에 기여하지 않고 그 혜택만 누리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바이러스는 무색 무취여서 누구에게 옮겨왔는지 누구에게 전염시킸는지 그때그때 가려내기 어렵다. 어쩌면 COVID-19은 무임승차(free riding)와 외부성(externality)을 노린 지능범인지 모른다. 개인이 아무리 방역수칙을 잘 준수한다 해도 공동체의 협조가 없다면 자신을 지킬 수가 없다. 말하자면, 방역은 공무원과 의사와 간호사만의 일이 아니다.

방역활동에 동참하는 일은 군대에 자원하거나 의병으로 싸우는 일과 마찬가지다. 방역지침을 지키고 생활수칙을 따르는 일은 자신이 숙주가 되지 않음으로써 바이러스 증식을 막는 행위다. 전쟁으로 치면 물자(군비)나 정보를 제공하는 일이다. 재택근무를 하고 영업시간을 줄이고 개인 간 모임을 자제하는 것은 경제활동과 사회활동을 통한 접촉을 줄여 감염 가능성을 낮추는 일이다. 장사를 제대로 못하고 일상의 불편함을 감수함으로써 공공재(방역)를 생산한 것이다. 백신과 치료제가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정부의 방침을 따르고 생활수칙을 준수하는 일이 방역이다. 국민이 감내한 손실과 고통은 당연한 의무가 아니다. 공동체를 살리기 위한 배려와 실천과 희생이다.

공동체를 망각한 무리들의 패악질

어느 사회나 공동체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자들이 있다. 종교와 이념을 빙자하여 정부와 시민들의 방역을 무리지어 헐뜯고 방해하는 자들이다. 이기심에 찌든 망상과 망동이 방역의 중요한 길목마다 찬물을 끼얹었다. 사회의 암종이고 국민의 짐이다.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확진자 세 명중 1명은 신천지예수교, 사랑제일교회, 인터콥 BTJ센터, IM선교회 등에서 감염되었다. 방역지침과 수칙을 무시하고 그들만의 믿음에만 집착했다. 휴대폰을 꺼놓고, 거짓으로 동선을 알리고, 진단검사를 거부하였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 개인간 거리도 지키지 않았다. 전세계 구석구석까지 선교를 하듯 COVID-19의 저변 확산에 목숨을 건 듯한 기세다. 문정권을 독재와 신적폐로 낙인찍고 무조건 반대와 저주를 일삼은 집단도 마찬가지다. 주관적인 의심과 바람을 객관적 사실로 뒤바꾸고 일을 저지르는 확신범이다. 이 두 부류가 합작한 작품이 지난 해 광복절 광화문 집회다. 전국에 바이러스를 퍼뜨려 방역에 재를 뿌렸다. 그들에게 과학과 상식은 악마의 속삭임이다. 그들에게 공동체란 그들 자신일 뿐이다. 일반 시민은 없다. 그동안 힘겹게 참아온 시민들이 분노하는 까닭이다. 만일 예수가 살아온다면 돌팔매질을 당하고 다시 십자가에 못박혀 매달려야 할 판이다.

시민의 협조와 희생에 보답하라

정부는 이미 3차에 걸쳐 재난지원금을 지급했다. 처음에는 모든 국민에게 10만원씩 주었고, 2차와 3차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위주로 피해 정도에 따라 300만원까지 지급했다. 일본정부가 개인에게 10만엔(110만원)씩 지급한 것에 비하면 소액이지만 서민들에게는 그런대로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지원금은 정부가 국민에게 시혜를 베푸는 차원이다. 방역에 참여하고 협조한 시민의 몫에 대한 보답이 아니다. 방역이 공공재이며, 시민이 공공재를 생산하는데 기여했음을 인식해야 한다. 가게문을 일찍 닫고 외출을 자제하고 거리두기하는 것 자체가 방역이다. 시민의 협조와 희생이 K-방역의 한 축이다. 그 손해와 불편은 홍수나 태풍으로 입은 피해와 전혀 다르다. 정부의 손실보상은 이런 인식에서 출발하여 구성원들이 서로 고통을 나누고 노고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손실보다는 기여로 따져야

정부의 보상은 피해를 입은 정도를 따지기보다는 방역에 기여했는지를 따져야 한다. 방역지침을 어기고 방역수칙을 무시하여 타인에게 피해를 입혔다면 보상에서 일단 제외해야 한다. 그들의 경제활동이나 사회활동은 사익을 위해 공동체를 위험에 빠뜨렸기 때문이다. 무임승차자에게는 보상이 아니라 손해배상을 청구해야 한다.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책임을 환기해줘야 한다.

정부의 방역지침에 협조하느라 사회활동(일상의 자유)를 자제한 것은 모두가 같은 보답을 받아야 한다. 경제활동이 제약되어 손실을 입은 경우라면 대상과 규모를 잘 따져봐야 한다. 예컨대, 공공기관과 대기업에서 월급을 받는 사람들은 대상이 될 수 없다. 손실 규모는 2019년 납부한 세금으로 추정하여 계산하면 될 것이다. 모든 손실을 보상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먹고 살기 위해서 방역 수칙을 어길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으로 내몰아서는 안된다.

이 나라는 기재부의 나라도 아니지만 정치인의 나라도 아니다. 나라의 주인인 국민의 시각에서 정치인은 유쾌한 상상을 하고, 기재부는 곡간지기의 소임을 다하면 그만이다. 전대미문의 위기상황에서 경제이론과 재정건전성은 금과옥조가 될 수 없다. 가계부채가 급증하는 마당에 국가부채만 붙잡아놓는 것이 상책은 아니다. 소득주도성장이 아니어도 시민들이 협조하고 희생한 몫에 대하여 정당한 보상을 해줘야 한다. 일단은 살고 봐야 할 것 아닌가. 

참고문헌

  • Boardman, A., Vining, A., & Waters, W.G. 1993. Costs and benefits through bureaucratic lenses: Example of a highway project. Journal of Policy Analysis and Management, 12(3): 532-555.

인용하기: 박헌명. 2021. 방역이란 공공재는 공동체가 만든다. <최소주의행정학> 6(2): 1-2.

K-방역은 망했나? 자가격리 한일비교

COVID-19가 온세상을 뒤덮고 있다.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재앙이 지난 1년 동안 우리의 삶을 짓누르고 있다. 사람들과 어울려 마음껏 먹고 마시고 떠들 수 있었던 일상이 참으로 꿈결같다. “그 당연함”의 소중함이여…

한국은 한발 앞선 진단키트를 앞세워 공격적으로 COVID-19 방역에 나섰다. 세계의 주목을 끈 이른바 K-방역이다. 하지만 수구 야당과 언론에 비친 한국은 한마디로 최악이다. 독재 권력이 폭주하면서 방역은 물론 민생도 망했댄다. 백신확보에도 실패했으면서 1,200억원이나 들여 엉망진창인 K-방역을 홍보했댄다. 재난지원금을 뿌려 표를 매수한다며 악다구니다. 초기에 중국인 입국을 봉쇄하지 않았고 마스크를 빼돌려서 마스크 대란을 자초했다는 억지와 날조가 아직도 반복된다. 수년간 맞아왔던 독감백신은 접종받은 사람이 죽었다며 게거품물고 나자빠지고, 초고속으로 개발되고 긴급사용이 승인·권고된 코로나 백신은 당장 맞아야 한다며 숨넘어갈 지경이다. 똥이든 된장이든 약이라면 달라는 대로 돈을 퍼주고 단숨에 목구녕으로 쑤셔넣을 기세다.

과연 K-방역은 망했나? 한국 정부가 정말 무능하고 무책임했나? 같은 통계치를 두고도 극과 극으로 치닫는 숫자놀음은 의미없다. 대신 한국과 일본의 자가격리가 어떻게 다른지를 비교하여 답을 찾아보자.

천신만고 끝에 일본에 입국하다

감염병 규제 때문에 한국에서 수 개월간 머물렀던 식구가 지난 달 중순에 일본으로 돌아왔다. 연말이 되고 COVID-19가 기승을 부리자 더 기다릴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일본비자를 받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제일 어려웠던 것은 소속 기관에서 발급받아야 하는 규정준수 서약서였다. 바뀐 외무성의 규정/지침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는지, 처음에는 발급해주지 않겠댄다. 대사관에 문의했더니 그냥 아무 데서나 구해서 내랜다. 황당하다. 다행히 기관이 입장을 바꿔 발급해 주겠댄다. 그런데 Line 앱을 사용할 수 있는 일본 스마트폰 번호가 있어야 한댄다. 급하게 중고 아이폰을 장만했다.

서약서 내용은 철저했다. 입국 전 14일부터 체온, 호흡, 피로 증상을 기록해야 했다. 출발 72시간 안에 진단검사를 해서 그 결과를 이민국에 제출해야 했다. 만일을 위해 의료보험(여행자보험)에 가입하랜다. 입국할 때 스마트폰에 Line 앱을 설치하고 14일간 건강상태를 보건소에 보고하랜다. 또 노동후생성의 코로나접촉확인 앱(COCOA)을 설치하고 현위치 정보를 기록하랜다. 입국시 감염검사를 받고 지정된 장소에 격리된댄다. 음성판정이 나오면 대중교통이 아닌 자가용이나 택시로 이동하랜다. 격리기간 중 사무실에 나오거나 낯선이를 만날 수 없댄다. 해당 증상이 보이거나 양성으로 판정되면 보건소와 상담소에 위치/이동 정보를 제공하고 조사에 협조하랜다. 항상 마스크를 쓰고, 소독제로 손을 씻고, 외부인과의 접촉을 피하라고 강조했다.

체류자격확인서에 필요한 출생증명서와 증명사진은 다행히 전자파일로 제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달 반을 기다린 확인서 원본은 서약서와 함께 제출해야 했다. 수개월째 임시 중단·지연·재개로 불안한 우체국 EMS 대신 Fedex로 보냈지만, 그마저도 1주일 넘게 걸렸다. 어렵사리 마련한 서류는 여행사를 통해서만 제출할 수 있었다.

출국을 며칠 앞두고 체온 기록과 진단검사 결과는 제출하지 않아도 된다는 통지가 왔다. 나리타공항에서 진단검사를 받고 입국하기까지 한 시간 이상 걸린다고 했다. 하지만 식구는 공항에서 건강상태질문서를 제출하고 발열검사만 받았을 뿐, PCR 검사를 받지 않았고, 격리되지도 않았다. 모바일 앱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듣지 못했다. 적혀진 규정과 현실이 한참 달랐다.

일본에서 자가격리는 권고다

자가격리 규칙은 강했다. 14일 간 온 식구들이 집에 머물러 있어야 했다. 학교도 유치원도 사무실도 나갈 수 없다고 했다. 음식재료를 사러 나갈 수도 없다더니, 나중에는 한사람만 마스크 쓰고 다녀오랜다. 직원은 시청에서 연락이 올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자가격리가 끝나기까지 단 한번도 시청에서 전화를 하거나 전자우편을 보내지 않았다. 누구도 어떤 모바일 앱을 어떻게 설치하고 어떻게 사용하는지 말해주지 않았다. 같이 밥을 먹고, 방을 쓰고, 잠을 자도 되는지 안되는지 말해주지 않았다. 사흘이 지나 시청에 전화를 했더니, 식구가 도착한 줄도 몰랐다.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설명해주지 않았다. 잘 모르는지 그냥 집에 머물러 있으라고만 했다.

쉽게 말해 자가격리는 그냥 본인이 알아서 집에 머무는 것이었다. 소속 단체나 공공 기관이 자가격리를 점검하고 관리하지 않았다. 본인이 마음대로 밖으로 나가 무슨 짓을 하든 어떠한 제지도 받지 않는다는 얘기다. 격리대상자가 길거리에 돌아다닌다는 소리다. 실효성도 없는 일을 꼬치꼬치 적어놨지만 통제도 안(못)하면서 일이 잘못되면 책임을 개인에게 조목조목 따지겠다는 것 아닌가? 관료들의 빨간띠질이다.

한국에서 자가격리는 의무다

한국의 입국절차와 자가격리 규정은 대체로 일본과 비슷하다. 외국인은 출발 72시간 내에 발급받은 음성확인서를 제출하고, 발열검사를 받은 후 14일간의 자가격리를 해야 한다. 물론 스마트폰이 꼭 필요하다.

하지만 단순히 서약서를 받는 일본과는 달리 한국에서 자가격리는 의무사항이다. 입국한 외국인은 안전보호앱을 설치하고 매일 건강상태를 입력해야 한다. 아침 저녁으로 체온을 측정하여 보건소에 통지한다. 또 보건당국이 직접 전화를 하거나 방문하여 점검한다. 일본과는 달리 숙박시설(호텔)에 머물 수 없다. 격리 장소를 무단으로 벗어나면 손목안심밴드가 채워지거나 지정된 시설에 격리당한다. 자가격리가 끝나기 전에 PCR 검사를 다시 받아야 한다.

질병관리본부의 자가격리중 생활수칙은 매우 구체적이다. 독립된 공간에서 자신만의 의복, 침구, 식기, 세면대, 화장실을 사용해야 한다. 식구 간 접촉을 최소화하되, 얼굴을 맞대지 않고 마스크를 쓰고 2미터 이상 거리를 둬야 한다. 외출이 불가피할 경우에는 보건소에 먼저 연락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에 따라서는 소독제, 마스크, 체온계, 음식 등을 제공하기도 하고, 격리대상자가 사용한 쓰레기 치워주기도 한다.

그럼 동경에서 한번 살아보시라

일본의 자가격리는 권고사항이다. 개인의 선의에 맡기고 사후책임을 묻는다. 개인의 사생활과 자율성을 끔찍이도 존중하는 것인지, 공동체의식과 기술과 의지가 부족한 것인지… 한마디로 각자도생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앱을 설치하는 것에서부터 격리해제 진단검사까지 철저하게 통제된다.

최근 COVID-19의 전파 속도가 가파르다. 미국은 매일 20만명이 확진되고 있으며, 영국은 6 만명에 이른다. 일본은 매일 2만명 검사에서 4천명이 확진되고 있고, 한국은 10만명 검사에서 천명을 기록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누구나 의심이 들면 길을 가다가도 무료로 진단검사를 받을 수 있지만, 일본에서는 절대 불가능하다(일단 집에서 37.5도 이상으로 3-4일 앓아야 한다).

한국은 지나칠 만큼 과감하고 치밀하게 대처하고 있다. 많은 인력과 자원과 기술이 동원되는 일이다. 그 고역을 버텨내고 있는 공무원과 의료진의 사투가 눈물겹다. K-방역을 헐뜯고 정부의 노력을 폄훼하는 수구세력들이여. 그럼 백신을 확보하고 있다는 뉴욕, 런던, 동경에서 한번 폼나게 살아보시라.

인용하기: 박헌명. 2021. K-방역은 망했나? 자가격리 한일비교. <최소주의행정학> 6(1): 2.

민망한 검사 선서와 법관 선서

지난 12월 23일 조국 전 장관 부인인 정경심씨가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되었다. 재판부는 정씨가 뻔뻔하게 인턴확인서와 표창장을 위조하고도 사실을 부인했다며 혐의 대부분을 인정했다. 이튿날 법원은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처분 집행을 정지하라고 결정했고, 검찰은 나경원씨와 관련된 13건에 대해 불기소 결정을 내렸다. 지난 10일에는 김봉현씨로부터 술접대를 받은 검사들이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96만 2천원이어서 백만원이 안된댄다. 숙성된 법기술로 빚어낸 알뜰하고 정교한 계산이다. 30일에는 끝간데 없는 막말과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던 전광훈씨가 무죄로 풀려났다. 문대통령이 간첩이고 황교안 대표가 선거에서 이겨야 한다고 설파한 전씨다. 지난 10월 28일에는 전 법무부 차관인 김학의씨가 2심에서 성폭력이 아닌 금품수수로 법정구속되었다. 검찰은 김씨가 별장에서 성접대를 받는 동영상을 확보하고도 두 번씩이나 무혐의로 사건을 뭉갰다. 참으로 눈물겨운 “내 식구 감싸기”다. 반면 “드투킹 특검”이 인터넷상 불법 댓글 조작 사건으로 기소한 김경수 지사는 11월 6일 2심에서 닭갈비집 사장의 결정적인 증언에도 불구하고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수구기득권 세력이 산 권력이다

나는 이런 사건의 사실관계를 소상히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몹시 불쾌하다. 노여움이 솟는다. 쓴웃음이 난다. 사건은 서로 다르지만 검사와 법관의 판단에는 일관된 맥락이 있다. 사법고시를 합격한 자와 그 편을 드는 자들의 포악함이다. 산 권력은 선출된 공직자(어공)가 아니라 바로 이들이다. 돈을 쥐고, 몽둥이를 들고, 붓을 휘갈기고, 나발을 불고, 무당춤을 추는 자들이다. 그들의 돈은 이웃을 돕는 성금으로도 쓰이지만 불순한 자들을 짓밟는데 쓰인다. 몽둥이는 도둑을 잡을 때는 얌전하지만, 기어오르는 난동꾼을 두들겨 팰 때는 사나운 짐승이다. 진리를 쓰는 붓은 추상처럼 매섭지만 꺾인 붓은 화려한 요설로 사람을 해친다. 사실과 정의를 읊어대는 나발은 감동이 있지만 거짓과 왜곡을 불어댈 때는 귀청을 찢을 뿐이다. 서러운 자의 한을 풀어내는 무당춤은 칼날도 녹여내지만 신심이 들지 않은 춤은 애먼 사람을 잡을 뿐이다. 선량들을 흡혈하는 진정한 적폐들이다.

기득권을 움켜진 무리들이 그들이 만들었고 누려왔던 판을 지키기 위해 지금 용을 쓰고 있다. 한가하게 아랫사람에게 은혜를 베푸는 상전놀이를 더이상 할 수 없게 되었다. 위기를 직감한 이들이 난폭해진 것이다. 그들만의 아성을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무너뜨리려는 반란군을 철저하게 짓밟아야 하는 절박감이 있다. 양심이고 체면이고 따질 때가 아니다.

그들의 신성불가침에 도전하는 역당逆黨들을 수구세력(정당이든 종교집단이든 시민단체든)이 마구잡이로 고발하면 경찰과 검찰이 성심을 다해 조사하여 기소한다. 먼지까지 탈탈 털거나 없는 죄를 만들어서라도 법정에 세운다. 수구 기레기들이 파리떼처럼 달라붙어 나발을 불어대며 바람을 잡는다. 말기술이 좋은 학자나 평론가가 거든다. 법관은 주문받은 대로, 법기술로 분칠된 대로, 나발이 부는 대로 망치질을 한다. 전주錢主가 이들을 끈끈하게 이어주고, 짝패들은 서로서로 품앗이를 한다. 사실이 어찌 되었는지, 논리가 어찌 되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 편이냐 아니냐를 물을 뿐이다. 설령 붓다나 공자가 살아온다 해도 패륜범이 되는 것은 한 순간이다. 차별과 유전무죄는 그들이 설계한 세상의 순리이고 진리다. 재벌 3·5 법칙은 미덕이다. 노무현과 한명숙을 보내고 이건희와 이재용을 풀어준 까닭이다. 산 권력의 벌거벗은 힘이다.

검사 선서와 법관 선서가 민망하다

검사 선서라는 것이 있다. 새로 임용되는 검사에게 정의를 실현하고 인권을 수호하는 공익의 대표자로서의 자세와 마음가짐을 엄숙히 하기 위함이란다. 참으로 민망하고 허망한 다짐이다.

“… 나는 불의의 어둠을 걷어내는 용기 있는 검사,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따뜻한 검사, 오로지 진실만을 따라가는 공평한 검사, 스스로에게 더 엄격한 바른 검사로서, 처음부터 끝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국민을 섬기고 국가에…”

법관 선서도 있다.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라고 했고, 법원공무원 규칙 69조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어차피 민망하기는 매한가지다. 

“…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양심에 따라 공정하게 심판하고, 법관윤리강령을 준수하며, 국민에게 봉사하는 마음가짐으로 직무를 성실히 수행할 것을…”

기자들에게는 한국기자협회의 윤리강령이라는 것이 있다.

“기자는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고, 진실을 알릴 의무를 가진 언론의 최일선 핵심존재로서 공정보도를 실천할 사명을 띠고 있으며…”

왜 이런 선서나 윤리강령이 필요한 것일까? 풋내기 검사나 판사나 기자라 해도 자기가 해야 하는 일을 모를 까닭이 있을까? 용기있는 검사라면 먼저 이승만과 박정희와 전두환에게 칼을 겨눴어야 하고, 진실을 따라가는 검사였으면 억지로 간첩이나 범인을 만들지 말았어야 했다. 헌법과 법률에 충실한 법관이라면 윗사람의 뜻대로, 피아를 차별하여 널뛰지 말았어야 했다. 진실을 알리려는 기자라면 사실을 왜곡하고 거짓을 퍼뜨리지 말았어야 했다.

비양심적 정치질에 국민은 없다

이들 모두 국민을 들먹이면서 “공정”과 “공평”을 말하고 있다. 검사도 법관도 기자도 정치 중립과 독립성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독재자의 눈 밖에 나면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가던 시절에나 맞는 얘기다. 검찰총장이 법무장관의 부하가 아니라며 대들고, 부장판사가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고, 언론과 목사가 대통령을 헐뜯어도 아무 일 없는 호시절 아닌가. 그런데도 검찰과 국회와 경찰의 신뢰도는 바닥이고, 언론은 세계 꼴찌수준이다. 견제받지 않은 권력의 숙명이다.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하고 비판한다는 자들이 실제 권력자라는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국민들을 호도하고 있다. 정치 중립을 방패삼아 국민이 염원하는 개혁에 온몸으로 저항하고 있다. 자신들이 곧 정의이고 양심이니 절대로 건들지 말라는 것 아닌가. 비양심적 정치질이다. 여기에 섬겨야 할 국민도 봉사할 공익도 없다. 그들만의 국가와 헌법과 법치와 상식이 있을 뿐이다.

인용하기: 박헌명. 2021. 민망한 검사 선서와 법관 선서. <최소주의행정학> 6(1): 1.

정부관료제의 석회화와 빨간띠질

정부관료제가 쓸데없는 규정이나 절차를 들먹이며 시민들을 골탕먹이곤 한다. 오랜 관행이라거나 전통이라는 이유로 고집을 피운다. 타성에 젖어 중복되고 지나친 규제에 막무가내로 집착한다. 상식과 합리성과는 거리가 먼 이른바 빨간띠(Red Tape)질이다. 관료가 다 해먹는 관료독재의 완장질이다. 못된 버르장머리다.

어떤 제도가 정착되면 사람의 자의성이 아니라 약속된 규칙과 절차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 효율성과 예측성이 높아지고 부패 가능성이 낮아진다. 하지만 그 제도가 변화하는 환경을 따라가지 못하면 오히려 독이 된다. 관료제 곳곳에 때가 타고 기름이 낀다. 흐름은 느려지고 재량은 짓눌려 숨이 막힌다. 조직이 뻣뻣해지고 돌처럼 굳어진다. 이른바 석회화石灰化(calcification) 현상이다. 인간이 제도를 부리는 주인이 아니라 제도에게 농락당하는 노예로 전락한다.

관료제의 석회화와 빨간띠질

지난 8월 지인에게 중고 워크스테이션을 보냈다. Xeon Gold CPU 두 개와 256GB DDR4 램과 3,800개 CUDA 코아 그래픽카드가 장착된 시스템이다. 사진을 모아 3차원으로 만드는 그림합성(Rendering) 작업에 필요한 사양이다. 수치계산용으로도 탁월한 성능을 보였다. 큰 골판지 상자에 완충재를 넉넉히 넣어 포장을 한 뒤 우체국으로 가져갔다. 나이가 지긋한 직원이 나와 살펴보더니 무게와 최장 길이는 괜찮댄다. 그런데 나머지 둘래가 2m가 넘는다며 소포는 안되니 EMS로 보내야 한댄다. 다시 포장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아 20만원에 가까운 비용을 지불하고 그만 손을 털기로 했다.

월요일 아침 그 직원이 전화를 걸어왔다.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느낌에 바로 달려갔다. 젊은 직원이 나와서 20만엔(220만원)이 넘는 물건은 수출로 간주된다고 했다. 수출대행서류를 작성해야 한다는 것을 노직원이 실수로 빠뜨렸댄다. 나는 소포에 맞게 다시 포장을 해오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컴퓨터는 이미 동경 국제우편물 사무소에 묶여 있댄다. 전혀 예기치 못한 일이었다. 노직원은 미안한지 내게 선물용 수건을 건네고 밖으로 나갔다. 난감하지만 어쩔 수 없이 수출서류를 작성하기로 했다. 우체국에서 당분간 국제우편물을 취급하지 않기로 했다는 소식에 조바심마저 들었다.

나는 우체국에서 이런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궁금했다. 젊은 직원은 동경 사무소 직원과 통화를 하면서 매뉴얼과 서류를 번갈아 뒤적인다. 내게 추가로 작성해야 하는 서류를 들이민다. 또 한참을 통화를 하더니 내게로 와서 금요일에 사용한 신용카드를 달랜다. 휴대용 카드기계가 찍찍 영수증을 토해낸다. 이전 거래를 완전히 취소했다고 설명을 해준다. 다시 저리로 가서 통화하던 직원은 다가와서 신용카드를 요구했다. 이번에는 수출대행 수수료가 포함된 전체 요금을 결제하는 것이랜다. 다시 동경 직원과 통화를 하더니 내게 취소된 영수증, 새 영수증, 신용카드 영수증 등을 수북이 안겨준다. 정말 미안하다면서 같은 수건 하나를 건넨다. 시계를 보니 1시간이 좀 넘게 우체국에 머문 셈이다. 허탈하다. 한국이었으면 얼마나 걸렸을까?

그런데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 다음날 세관직원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쪽 직원을 통해 확인해 보니 내가 서류에 적은 물건의 가치가 왜 그리 비싸냐는 것이었다. 사양에 따라 컴퓨터 가격이 고무줄인 것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나는 직원에게 컴퓨터 영수증을 보여주면서, 우체국에서는 정확한 금액이 기억나지 않아 세금을 뺀 근사치를 적었다고 말했다. 직원은 고작 천엔(11,000원) 차이일 뿐이라며 어이없다는 표정이다. 다음부터는 서류에 물건 가치를 정확히 적으라는 세관직원의 훈계를 씁쓸하게 전달해 주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비싼 물건을 터무니없이(세금이나 비용을 줄이기 위해) 낮은 가격으로 적은 일을 문제삼아야 하지 않을까? 나름대로 정직하게 적은 가격이건만 300만원에서 만원 틀렸다고 이리 트집을 잡는 것일까? 꼼꼼함이 지나친 것일까? 아니면 눈치껏 20만엔 아래로 적어야 하는데, 공연히 일을 복잡하게 만들어 자신을 귀찮게 했다는 핀잔일까? 알쏭달쏭하다. 며칠 뒤에 수출대행을 확인한 문서가 도착했으나 영 뒷끝이 개운찮다. 보름이 넘도록 EMS가 늦어지자 지인은 한국이었으면 당장 우체국에 찾아가 항의를 하고 배상을 요구했을 것이라며 흥분했다.

악한 조직에서 일하는 선한 사람

소정 선생님께서 초월윤리를 조직론에 적용하면서 조직(공식)과 사람(비공식)의 선악을 말씀하셨다(1991: 131-133). 나쁜 조직에서 일하는 착한 사람이 좋은 조직에서 일하는 나쁜 사람보다 훨씬 못하다. 나쁜 조직은 현실(고객의 요구)에 적응하지 못해 사람을 불편하게 하고 화나게 한다. 좋은 일을 할 의지가 없거나 효율성과 효과성이 있는 방법을 가지고 있지 않다. 거기서 일하는 사람이 아무리 선해도 그 결과가 선하기 어렵다.

내가 관찰한 우체국 직원은 실수를 했지만 나름대로 성실하게 일했다. 고객을 친절하게 대했다. 수출서류를 빠뜨린 것도 이 동네에서 비싼 물건을 EMS로 보내는 일이 드물었던 탓이다. 하지만 우체국의 서류양식은 아직도 번잡하고 영수증은 길고 많았다. 한시간 넘게 통화를 하면서 신용카드 결제를 취소하고 다시 결제해야 했다. 낯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조직의 능력이 부족한 듯했다. 정보시스템 자체는 우수하나 이것을 활용하는 사람과 제도는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인감도장과 서류양식에 매달려 있고, 화급을 다투는 전염병 통계를 팩스로 모으고 있다.

얼마 전 스가 총리가 디지탈청을 만들어 일본의 전자정부를 혁신하겠다고 밝혔다. 광인터넷으로는 선두권을 달리지만 전자정부는 10위 안에 들기도 버거운 일본이다. 하지만 전자정부는 기술 문제가 아니다. 아무리 첨단 기술이라도 관료제의 석회화와 빨간띠질을 풀어낼 수 없다. 정보기술이 돌덩이처럼 굳어진 관료제의 머리와 팔다리를 쉽게 풀어낼 수 있다는 기대는 신기루다. 시민들이 관료제의 문제점을 자각해야 한다. 좌절하고 분노하고 힘을 모아야 한다. 그래야 관료제를 깨울 수 있고 변화시킬 수 있다. 결국은 기술이 아닌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이다. 지난至難한 일이다.

인용하기: 박헌명. 2020. 정부관료제의 석회화와 빨간띠질. <최소주의행정학> 5(12): 1.

윤석열 총장은 추미애 장관의 부하다

국정감사에 출석한 윤석열씨가 검찰총장은 법무부장관의 부하가 아니라고 말했다. 정무직 장관이 검찰의 상관이라면 검찰의 정치중립과 사법의 독립이 훼손된다고 했다. 추장관이 윤총장을 특정사건에서 배제시킨 것은 총장의 지휘권을 박탈한 것으로 검찰청법을 위반한 행위란다. 추장관의 지휘는 부당하고 비상식인 것이 확실하댄다. 뜬금없이 법무부와 검찰청은 법에 의해서만 관계되어 있댄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그래서 어쩌자는 것인가. 검찰총장이 법무부장관한테 할 수 있는 가장 점잖은 표현이 “중상모략”이면, 추장관은 윤총장의 부하인가? 대통령은 맞먹을만 한가? 대체 검찰총장이 무엇이란 말인가?

윤석열씨는 추미애씨의 부하다

부하部下 혹은 하관下官(subordinate)은 관료제의 직책상 자신보다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다. 상사上司(supervisor) 나 상관上官(superior)은 부하를 관리하는 사람이다. 아랫사람에게 일을 시키고 감독한다. 일상에서 상관이나 부하는 군대나 왈패 느낌을 주는 말이긴 하다. 윤총장은 검찰의 정치 중립성을 말하기 위해 장관의 부하가 아니라고 말했댄다. 우리말을 제대로 구사할 능력이 빈약하거나 법리法理라는 말장난으로 혹세무민한 것이다. 김종민 의원의 지적대로 상사와 부하는 지휘·감독 관계를 말한다. 정부조직법 32조는 법무부장관은 검찰 사무를 관장하기 위해 장관 소속으로 검찰청을 둔다고 했다. 검찰청법 8조는 법무부장관이 검찰 사무의 최고 책임자라고 적고 있다. 구체적 사건에 대하여 추장관의 수사지휘를 받아들였다는 것 자체가 윤총장이 부하라는 뜻이다. 상식으로 봐도 윤석열 검찰총장은 추미애 법무부장관의 지휘·감독을 받는 부하임에 틀림없다.

윤총장은 검찰권은 국민에게 있다면서도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적법하게 임명한 법무부장관의 지휘권은 얼버무렸다. 또 추장관의 검찰총장 지휘는 불법이고 부당하다면서도 (장관의 지휘는) 수용하고 말 것이 없댄다. 그저 법적으로 다투냐 마냐 하는 문제랜다. 그런데 자신이 장관과 법정에서 공박하면 법무·검찰이 혼란스러워지고 그 피해는 온전히 국민에게 돌아간댄다. 그러니 대의를 위해 쟁송을 피하는 것이란다. 이게 도대체 무슨 뜬구름잡는 소리인가? 수용하고 말 것이 없는데 뭐하러 법으로 다투는가?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뭐 이런 것인가? 치마두른 “어공”의 히스테리에도 대인의 풍모를 흐트리지 않는 “늘공”의 여유인가? 천하무적 검찰 권력으로 무장한 칼잡이 총수總帥의 기개인가? 얼치기 정치꾼의 허세인가?

장관의 지휘가 명백히 위법이라면 검찰총장은 장관에게 재고를 요청하거나, 법으로 다투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나라를 뒤흔들만한 사안이라면 검찰총장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정하게 법을 집행하여 장관을 잡아들이고 그 장관을 비호하는 대통령을 조사해야 한다. 설령 권력자의 힘에 밀려 뜻을 이루지 못한다 해도(체포에 실패하고 파직당하고 감옥에 끌려가도) 말이다. 그것이 검사다운 처신이며 밥값하는 일이다. 그럴 배짱이 없다면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좋다. 위법이라고 믿으면서 항명할 용기가 없어 장관의 지휘를 수용하는 것도, 그래놓고 나서 수용하고 말고가 없다고 둘러대는 것은 직무유기나 구차한 변명이다. 검사는 커녕 조폭의 격에도 맞지 않는 양아치짓이다. 그 골목의 상도商道를 걷어차는 짓이다.

<맹자> 양혜왕장의 가르침

올바른 처신이라는 것은 그 시대, 그 사회, 그 자리(상황)에서 적절하다고 받아들일 만한 언행과 태도다. 내용과 형식 모두 적절해야 한다. 이러한 합당함은 보편성과 특수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 공公과 사私에 어울리는 처신이 따로 있으며 미국과 일본에 맞는 처신은 다를 수밖에 없다. 구태여 근본주의자의 교조敎條라거나 기회주의자의 방편方便일 뿐이라며 깎아내릴 필요는 없다.

관료제는 상급자(상관)와 하급자(하관)의 계서질서를 근간으로 한다. 책임과 관점(입장)과 선호가 다른 상하上下는 갈등할 수밖에 없다. 역할 자체가 애초부터 서로 대립하고 견제하도록 설계되기도 한다. 상하가 모두 선하다면 갈등은 선하게 동작하고, 모두 악하다면 갈등은 크든 작든 해를 끼칠 가능성이 크다. 전자의 경우는 문제가 없고 후자는 답이 없다. 올바른 처신은 상하의 이해관계와 견해가 엇갈리는 상황에서 중요하다. 누가 옳고 그른가 하는 문제라기보다는 어떻게 갈등을 받아들여 관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孟子>의 梁惠王章句下에서 실마리를 풀어보자.

不得而非其上子非也. 爲民上而不與民同樂子亦非也.

(웃사람이 베풀지 않아서) 아랫 사람이 즐거움을 얻지 못했다 하여 그 윗사람을 비난하는 것도 잘못이고, 백성의 윗사람이 되어서 백성과 즐거움을 함께 하지 않는 것도 또한 잘못이다. 관료들이 최소한 하게 되어 있는 일을 한다면(딱히 위법한 행동을 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백성들의 일을 보살피지는 않는) 백성들은 만족스럽지는 않겠지만 그런 관료를 비난해서는 안된다. 아쉽고 화가 날 수도 있지만 욕설을 내뱉고 물리력을 동원해서는 안된다. 물론 공무원이 법에 나와 있는 것만 기계적으로 하는 것도 잘하는 짓은 아니다. 이 구절은 가진 자의 포악과 가지지 못한 자의 난동을 피하려는 소정의 최소주의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공직자의 올바른 처신

하급자는 상급자의 명령을 평가하여(정당하다, 부당하다 등) 행동을 결정한다. 명령을 수용하거나, 비판하거나, 그만두거나, 항명할 수 있다. 물론 박정희나 전두환같은 권위주의 정권에서는 하관의 선택은 극히 제한되고 위험을 동반한다. 만일 상관의 명령이 합법이고 정당하다면 하관 대부분은 수용한다. Barnard (1968)와 Simon (1976)의 용어를 빌자면 아랫사람의 수용영역(zone of indifference or acceptance) 안에 들어가는 명령이기 때문에 의심을 품지않고 그냥 받아들인다. 물론 나름의 의견을 개진하여 내용을 조율할 수도 있다. 어떤 하관은 명령이 내키지 않을 수도 있지만 불법이 아닌 이상 거부할 명분은 없다.

만일 자신의 양심이 상관의 정당한 명령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수용영역에서 벗어난 명령이라고 확신한다면) 바로 자리를 내놓고 물러난다. 누구의 잘잘못이 아니라 신념과 견해가 서로 다를 뿐이기 때문에 구차하게 변명할 일도 없다. 자리를 떠난 뒤에도 상급자를 비난하지 않는다. 불필요한 언행으로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자중한다. 상급자에 대한 예의이다. 상사 앞에서는 아무 말도 못하면서 동네방네 떠벌려서는 안된다. 당당하게 항명할 배짱이 없으니 눈치나 살피다가 뒤에서 상사를 욕보이는 짓이다.

만일 상관의 명령이 절차와 내용에서 흠이 있다면, 우직한 하관은 부당한 명령을 비판하고 철회를 요구할 것이다. 이회창씨가 감사원장을 그만 둔 것처럼 명령을 거부하고 자리에서 물러남으로써 부당함을 호소할 수도 있다. 사안이 중대하다면 직업윤리에 충실한 하관은 명령을 이행하지 않고 준법투쟁을 하거나 법에 호소한다. 상황에 따라서는 상관을 굴복시킬 수도 있으나 어느 경우이든 불이익을 받을 위험을 감내해야 한다. 상관의 명령이 부당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거역拒逆하지 않거나 적극적으로 이행한다면 자리나 보전하거나 권력을 탐하는 하관이다. 공익은 커녕 자나 깨나 자기 혼자 먹고 살 걱정만 하는 자다.

합법적이고 정당한 명령을 하급자가 수용하지 않는다면 상급자는 어떻게 해야 하나? 좋은 상관은 섯불리 화를 내거나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다. 하관을 불러다 놓고 다짜고짜 “까라면 까야지…”하면서 정강이를 걷어차지 않는다. 상황을 냉철하게 판단하여 지극히 합법적인 방법으로 행동한다. 공익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뿐 개인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다. 하관들이 집단으로 명령을 거역하고 여론이 불리하게 돌아간다고 해서 함부로 소신을 접지 않는다. 인내심을 가지고 법과 절차를 설명하고, 엄정하고 절제된 지휘·감독권을 행사한다. 선한 상관은 평소부터 하관에게 모범을 보여 신뢰를 쌓는다(수용영역을 넓혀둔다). 권위는 기본적으로 자리에서 부여되지만 그 사람의 행동에 따라 올라가거나 떨어진다.

법무부장관의 처신

추장관과 윤총장의 대립은 15년 전 천정배 법무부장관과 김종빈 검찰총장의 갈등과 비교된다. 천장관은 2005년 당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던 강정구 교수를 구속수사하지 말라고 김총장을 지휘하였다. 장관과 총장은 구속 여부에 대해 의견 교환을 했고, 장관이 법에 따라 수사지휘를 결정했다. 김총장은 수사지휘권 행사가 적법했고 수용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총장은 장관의 지휘 공문을 받은 다음 날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천장관의 지휘가 합법적이긴 하나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공정한 수사와 재판에 필요한 검찰의 정치 중립성을 침해한다고 말했다. 장관의 부당한 수사지휘를 수용함으로써 자신은 검찰 내부의 신뢰를 잃었다고 했다. 부하 검사와 국민에게 부당성을 호소하기 위해 사퇴했다는 얘기다.

천장관은 김총장의 의견(구속 수사)이 변치 않음을 확인한 뒤 수사지휘권을 행사했다. 자신의 결정이 어째서 적법한지를 시시콜콜 따지거나 구차한 설명을 늘어놓지 않았다. 군더더기가 없었다. 김총장이 사직서를 내고 언론을 통해 자신을 비난했음에도 불구하고 화내지 않고 맞대응하지 않았다. 가장 인상적인 천장관의 모습이었다.

추미애 법무부장관도 적법한 수사지휘를 통하여 수사팀이 독립적으로 수사하여 그 결과만 윤총장에게 보고하도록 했다. 다만 야당과 검사들과 설전을 벌이게 되면서 공직자의 처신이 아닌 정치인의 행보로 비춰졌다. 아들의 병가를 둘러싼 검찰조사와 국정조사가 맞물려 추장관으로서는 물러설 수도 침묵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수구세력의 의혹 제기와 고발이 무혐의 처분으로 끝나면서 추장관은 다시 옷깃을 여미었지만, 좀더 인내하고 자제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부끄럽고 구린 데가 많은 자들이 두려워하는 사람은 자신들이 의도한 도발과 패악질에도 차분함과 단호함을 잃지 않는 상대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처신

김총장은 사퇴할 때까지 처신을 잘했으나 그 다음이 문제였다. 장관과 본인이 각자의 소신을 펼친 결과이기 때문에 수사지휘를 수용했다고 했다.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했으나 윗사람을 비난하지 않았다. 그랬으면 조용히 물러나 자중했어야 했다. 기자들에게 구구절절 사설을 늘어놓지 말았어야 했다. 한참 지난 뒤 점잖은 자리에서 담담하게 회고하는 편이 좋았을 것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처신은 한심하다. 조직을 이끄는 리더쉽과 공직자의 기본 자질이 있는지 의문이다. 장관의 수사지휘를 수용한다면서 수용하고 말 것이 없다느니 장관과 쟁송하느니 마느니를 입에 올리지 말았어야 했다. 쓸데없이 말이 많아서 탈이었다. 수사지휘가 확실하게 부당하면 수용하지 말아야 하고(장관을 직권남용으로 체포하든지), 아니면 군소리 말고 따라야 했다. 정히 양심에 반하는 일이라면 조용히 자리를 내놓고 떠나야 했다. 명색이 조직의 장이라는 자가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못하고 횡설수설해서야… 법적으로는 장관의 부하가 아닌데, 장관의 지휘를 수용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수용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이도 저도 아닌 궤변을 늘어놓아 사람들을 헷갈리게 하고 있으니… 대놓고 항명할 명분이나 용기는 없고, 그렇다고 검사물도 못먹어 본 “치마 나부랭이”의 지휘를 받는다는 것을 인정하자니 검사라는 자존심이 울고… 뭐 이런 것 아닌가? 도대체 검사가 뭐길래 윤총장이 이러는 것일까?

권위주의 정권은 거의 대부분 검사출신을 법무부장관으로 임명했고, 수사지휘권은 발동되지 않았다. 검사동일체니 상명하복에 찌든 자들이니, 장관이 총장에게 전화해서 운을 띄우면 그만이었다. 형식상 지휘는 아니지만 알아서 기어야 한다는 것을 검사들은 본능처럼 알았다. 이견없이 선문답같은 덕담만 오가는 통화는 우아했다. 검사 선후배들은 윗분의 뜻을 헤아린 댓가로 “정치 중립”을 방패삼아 무소불위 검찰 권력을 지켜내고 검찰 정치를 마음껏 즐겼다. “정권의 시녀” “견찰” “검새” “떡검” “색검” “섹검”은 화려했던 그들의 추억이다.

결국은 검찰의 기득권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검찰공화국은 상수常數다. 이 나라를 이끄는 것은 검사 2천여 명이다. 그 어려운 사법고시를 패스한 전교 일등들 아닌가. 누가 감히 감놔라 대추놔라 하는가. 어떠한 외부의 평가나 통제도 용납될 수 없다. 검사를 모욕하는 불경이자 반역이다. 검찰의 판단은 그 자체로 정의이자 진리다. 신성불가침이다. 이것이 검찰이 말하는 정치 중립이다. 추장관은 검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바지입은 사내가 아니기 때문에 들이받힌 것이다. 서울대 고대 출신 검사가 즐비한데 경희대 한양대 상관이 웬말인가? 하물며 학번도 없는 상고딩 주제에 치마 판사를 장관에 앉혀 검찰을 바꿔보겠다고 덤볐던 노무현은 얼마나 같잖았을까?

윤총장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고 조직에 충성한다고 말했다. 검사에 의한 검사를 위한 검사들만의 공화국을 사수하느라 용쓰고 있다. 정말 눈물겨운 모습이다. 권력에 맞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정의의 사도다. 하지만 정치를 하는 두목이라기보다는 주먹을 휘두르는 행동대장이다. 세상이 달라진 줄을 모르고 도끼질만 해대는 맹장猛將이다. 이제는 검찰 개혁에 공감하는 검사들이 많아졌다. 국민들은 작년 조국 대전을 통해 검찰이 어떻게 멀쩡한 시민을 때려잡는지 똑똑히 보았다. 이명박을 혐의없음으로 풀어주고 한명숙을 뇌물죄로 엮어 날려버린 검찰의 민낯이다. 깨어있는 시민은 이제 누가 적폐인지 분명히 알고 있다. 

인용하기: 박헌명. 2020. 윤석열 총장은 추미애 장관의 부하다. <최소주의행정학> 5(11): 1-2.

“추안무치”와 “달의 몰락”과 계몽군주

네 자로 된 고사성어가 정치인의 입에 오르는 일은 흔하다. 양반의 품격과 학식은 사자성어로 완성된다고 믿는 것일까? 일부러 투박한 영국식 발음과 라틴어를 고집하는 미국인의 현학이랄까. 물론 꼭 맞는 비유여서 나도 모르게 무릎을 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열이면 아홉 이상은 돈주고 족보를 산 양반네들의 싸구려 에헴이다. 고개가 갸우뚱 하다가 손발이 오그라들고 닭살이 돋는다. 조미료가 듬뿍 든 음식을 털어넣은 듯 속이 거북하다. 도포 차림으로 공자왈 맹자왈만 하면 무얼 하는가. 사실도 아닌 일을 어설픈 비유로 힐난해놓고 스스로 대견해하는 모습이라니. 귀여운 구석조차 없는 몹쓸 “아재개그”다. 적개심이 지나쳐 정신줄을 놓은 꼰대들의 작태다. 언어에 대한 테러다.

“추안무치”와 “주안무치”

지난 2일 야당의 원내대표인 주호영씨는 추장관 아들의 병가 의혹을 이어가면서 “한마디로 추안무치”라고 일갈했다. 제 딴에는 후안무치厚顔無恥에서 기가막힌 운율을 따냈다고 생각했을까? 주씨가 추앙하는 윤석열 검찰이 불기소 처분한 사건 아닌가. 그래도 죽은 자식 불알만지기인가? 현실을 부정하고 자신조차 속이려는 몸부림일까? 도저히 맨정신으로는 하기 어려운 일이니 주안무치酒顔無恥 아닌가?

비유 수준을 기하학의 차원에 빗대어 보자. 점은 0차원으로 표현된다. 점을 이은 선은 1차원이고, 가로와 세로로 구성된 평면은 2차원이며, 높이가 더해진 입체는 3차원이다. 대상에 대한 설명은 0차원이라 할 수 있고, 단순 비교는 1차원(“너는 나의 봄”), 공간과 시간 비교는 2차원(“한국의 제갈량”)이다. 말하고 듣는 멋은 3차원의 축이다. 강물처럼 자연스레 흐르고 숲처럼 아름다운 비유를 말한다.

“추안무치”는 0차원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멋과 감동은 커녕 부실하기 짝없는 설명이다. 그냥 말장난이다. 철부지의 “너 시러” 수준이다. 중국 고사를 빌어오고 나름의 운율을 넣었지만, 사실이 아닌 것을 어거지로 비틀어버린 것이다. 게다가 나라를 돌보지 않아 빼앗긴 일과 병사가 병가를 얻은 것(설령 탈영이었다 해도)을 병치시킨대서야… 그저 비난과 저주를 담은 막말을 “아재개그”로 치장했을 뿐이다. 조국을 조롱하는 “조로남불”도 오십보 백보다. 전방위로 조장관의 삼족을 탈탈 털었지만 검찰은 아직도 그의 불법행위를 증명하지 못하고 있다. 언론이 어마어마하게 쏟아낸 “가족사기단” “조국펀드” “위장이혼” “표창장 위조”는 도대체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지금까지 명백히 드러난 것은 최성해의 가짜 학위와 검찰개혁의 당위성 뿐이다.

<달의 몰락>과 자기기만

작년 수구세력이 김현철의 <달의 몰락>을 끌어들여 문대통령을 비난했다. 황교안씨와 나경원씨가 주도한 자유한국당의 장외집회에서 틀었다는 노래다. 설화舌禍에 휘말린 청와대 비서관 이름이 가수 이름과 같다는 이유로 달의 영어발음인 문(Moon)을 엮어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노래가 무엇을 말하는지 황씨와 나씨는 알고는 있었을까? 멋과 미추美醜와는 담을 쌓은 자들이다. 자신에게 칭찬인지 저주인지 분간을 못하는 천둥벌거숭이들의 어리석음이여… 문재인이 실제 몰락하는 상상이라도 하는지, <달의 몰락>을 들으며(부르진 못하고) 낄낄대는 순진무구함이여… 자학개그다.

자신(수구세력)을 “처음 만났을 때도” “무참히 차버릴 때도” 자신이 짝사랑하는 그녀(국민)는 “탐스럽고 이쁜” 달(문재인)이 좋다는 것 아닌가. 자신과 “매일 만날 때에도” “완전히 끝난 후에도” 그녀는 오매불망 달을 사랑한다는 것 아닌가? 자신은 죽었다 깨나도 그녀에게 눈길 한번 받지 못하고 무참하게 채인다는 것 아닌가? 그녀의 일편단심에 상처받고 질투심과 좌절감에 사로잡혀 연적에게 고약한 주술을 걸고 있다. 제발이지 눈앞에서 사라지든가 죽어나 버려라. 아니 달이 정말로 몰락하는 환영이 보이고 이제 그녀는 내 것이라는 통쾌한 상상이다. 현실도피이자 자기기만이다.

과연 그 저주가 약발이 있었던 모양이다. 작년 “조국대전”이나 올해 “황제휴가”를 통해서 수구 기득권 세력이 사생결단으로 덤벼들었지만, “탐스럽고 이쁜” 달을 좋아하는 그녀의 마음은 한결같으니 말이다. 아무리 파상공격으로 흔들어 대도 문대통령의 지지율이 4할 밑으로 내려가지 않고 있다. 역대 최고치라고 한다.

계몽군주와 식자우환

지난 달 25일 열린 10.4 남북정상선언 기념 토론회에서 유시민 이사장이 김정은 위원장을 빗대어 “계몽군주”라고 표현했다. 시공간을 가로지른 그의 비유는 여러 가지 느낌을 담고 있다. 옛날처럼 해서는 살아남기 어렵겠지, 권력유지를 위해서 어쩔 수 없겠지, 계속 그렇게 해주라(철부지 아이를 지긋이 타이르는 꼬드김이랄까), 그래도 왕은 왕이다 등… 수구세력들은 폭군을 칭송한 요설이라고 비난했다. 맥락도 빼고 배경 지식도 빼고 막무가내로 빨갱이칠을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단장취의 신공이다. 화자는 가벼운 비틀기로 멋을 냈는데 청자는 문자를 트집잡아 죽기살기로 달려들고 있으니… 불립문자不立文字라 했거늘. 이런 식이면 양상군자梁上君子는 도둑을 고무·찬양한 발언인가? 유이사장은 (수구세력들에게) 너무 고급스러운 비유를 했다며 식자우환識字憂患이라고 했다. 0차원도 버거운 자들이 어찌 3차원의 입체감을 알겠는가.

“추안무치”나 “조로남불”이나 수준 미달이다. 정신 건강을 해치는 말고문이다. 폭행에 가까운 말폭력이다. 이런 문화·예술 테러는 대개 수구 기득권 세력의 몫이다. 배운 게 없어서가 아니다. 간절하게 땀흘리고 피흘리고 눈물을 떨구고 기쁨을 나눠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희노애락을 예쁜 꽃으로 그려내고 멋진 가락으로 뽑아낼 수 없는 사람들이다. 정오차의 <바위돌>을 금지시키고, 이창동의 <시>를 낙제시킨 자들이다. 그동안 완장을 차고 모든 것을 맘대로 주물러왔기에 자신의 특권(반칙)을 인정해주지 않는 세상이 낯설고 원망스럽다. 기가 막히다고 확신한 비유가 전혀 먹히지 않는 현실이 서럽고 화난다. 기득권 놀음에 빠져 스스로 퇴화된 줄도 몰랐던 것이다. “말의 형식을 빌린 폭력”(1991: 322)이 소음이 되고 악취가 되고 흉기가 되어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다. 

인용하기: 박헌명. 2020. “추안무치”와 <달의 몰락>과 계몽군주. <최소주의행정학> 5(10):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