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초짜 4인의 무엄한 기자회견

대통령선거가 다가오면서 여야 후보들이 서로 치열하게 다투고 있다. 정적의 정견을 비판하기보다는 사생활이나 약점을 찾아 물고 뜯고 있다. 짜증만 돋우는 비열하고 추잡한 짓이다. 하지만 정말 참기 어려운 것은 대선에 나선 정치초짜들의 황당한 언행이다. 철딱서니가 없는 것인지 순진한 과대망상인 것인지… 특히 9월 2일 뉴스버스에서 검찰이 수구야당에게 유시민, 최강욱, 황희석 등을 고발하도록 사주했다고 보도한 이후 여야 정치인들의 언행은 거칠다 못해 과격해졌다. 간절한 의사를 분명하게 밝히는 최소한의 말이 아니라 그때그때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그대로 배설하는 짓이다. 말폭력이다. 어떻하든 대중의 시선을 돌려 책임을 모면해보려는 몸부림에 가깝다.

기자회견은 화풀이 장소가 아니다

야당 초선의원인 윤희숙씨는 지난 8월 25일 기자회견을 열고 “친정아버님”의 농지 매입을 해명했다. 자신이 관여한 것은 아니지만 염치와 상식을 지키기 위해 의원직을 사퇴한다고 했다. 이게 뭐지? 혹자는 한국정치에 죽비를 때렸다느니, 그녀의 도덕기준이 너무 높아서라느니 거들었지만, 곧바로 쏟아진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망신만 당했다. 집을 두 채나 가진 임대인이면서 “저는 임차인입니다”로 국민을 기망했던 그녀의 업보일까? 27일 다시 기자들 앞에 선 윤씨는 분노와 저주를 퍼부어댔다. “낄낄거리며 거짓 음해를 작당한 민주당 정치인들”은 “평생 공작정치나 일삼으며 입으로만 개혁을 부르짖는 정치 모리배”라고 쏘아붙였다.

그녀의 핏발이 선 듯한 눈동자와 독기를 품은 목소리는 흡사 항일독립투사의 절규에 가까왔다. 해방이 되어 고국에 돌아왔건만 권력을 틀어쥔 친일파들에게 욕보임을 당하는 억울함이랄까. 하지만 현실은 서울에 사는 80대 노인이 법을 어기고 세종시에 3,300평 농지를 샀다는 것이다. 본인이 동의해서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조사한 부동산 투기아니던가? 도대체 윤씨는 왜, 누구에게 화를 내는 것일까? 의혹제기로 그 땅을 온전히 상속받을 수 있는 길이 없어졌기 때문일까? 민주당이 원수라면 당사를 박차고 들어가 천방지축으로 소리를 지르고 머리끄댕이를 잡을 일이었다. 방송을 보는 국민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화풀이를 한단 말인가.

지난 9월 8일 기자회견을 자청한 윤석열씨가 쏟아낸 울분과 비난 역시 납득하기 어렵다. 뉴스버스 보도에 이은 각종 의혹제기에 격앙되었던 모양이다. 윤씨는 “제가 그렇게 무섭냐? 저 하나 [정치]공작으로 제거하면 정권창출이 되나?”며 목소리를 높였다. 출처가 불분명한 괴문서를 가지고 여당이 벌떼처럼 떠든다며 비난했다. 모두들 제보자가 어떤 사람인지 안다면서, 숨어서 폭탄(의혹)을 던지지 말고 당당하게 나서라고 일갈했다. 적반하장으로 분기탱천憤氣撐天한 정치초짜의 유치함이다. 방송에 나와서 씩씩거리며 삿대질을 하며 증거를 대라니… 무엄하다. 그런 기개라면 “애들 풀어서” 민주당사나 청와대로 뒤집어 놓았어야 했다. 왜 애꿎은 국민들에게 분풀이를 한단 말인가? 대놓고 공익제보자를 협박하는 짓이다. 유권자를 화나게 할 뿐이다. 정말 검찰이 야당에게 고발을 사주했다면, 본인이 몰랐다 해도 당시 검찰총장으로서 국민에게 사죄해야 할 일 아닌가.

사실을 밝히고 책임을 지는 자리다

같은 날 열린 김웅씨의 기자회견은 횡설수설에 가까왔다. 고발장을 썼다는 것인지 아닌지, 손준성씨에게 받아 수구야당에 전달했다는 것인지 아닌지 아리송하다.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6개월마다 휴대폰을 바꿔서 확인할 수도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최대한 협조할테니 조사기관에서 진실을 하루빨리 규명해달라고 했다. 또 자신에 대한 공작을 중단하라고 여당을 겨눴다.

잘 나가던 검사로 <검사내전>까지 펴냈다는 자의 변명이 궁색하다. 영혼없는 말이다. 제보자는 아는데 동기인 손씨는 모른다니… 국민을 바보로 아는가? 대화방을 폭파했다더니 뇌세포를 골라서 폭파한 모양이다. 눈알처럼 잔머리를 굴리는 소리가 들린다.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온갖 거짓말을 늘어놓는 양아치의 비루함이다. 그가 당에 전달했다는 문서와 당에서 변호사에게 건넸다는 문서와 실제 변호사가 제출했다는 고발장이 오탈자까지 판박이라는데도 나라의 기강을 무너뜨린 일에 연루되었다는 부끄러움과 책임감은 없다. 시원하게 귀싸대기를 올리고 싶은 충동을 부를 뿐이다. 이럴 양이면 뭐하러 기자회견을 예고했단 말인가?

지난 8월 4일 최재형씨가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꼭두각시인양 손짓은 어설프고 틀에 짜인 웅변은 식상했다. 벌써 승리한 듯 두 손을 불끈 쥐고 연단을 도는 작은 거인의 모습에 빵 터졌다. 늙은 이승복이나 학도호국단장의 초상이다. 그는 대한민국이 무너져 간다고 했다. 문재인 정권을 텔레반이라 했다. 그러나 쏟아지는 질문에는 준비가 부족했다며 답을 미뤘다. 그럼 왜 대선에 나온 것일까? 7월 2일 대선 여정에 오른 윤희숙씨도 “국민의 삶을 망치는 텔레반으로부터 권력을 찾아오겠다”고 했다. 텔레반 정권에서 어떻게 돌싱녀가 감히 얼굴을 내밀고 기자회견을 한단 말인가? 6월 29일 출마를 선언한 윤석열씨도 자유민주주의와 헌법가치와 법치와 공정과 상식이 무너졌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문정권에서 감사원장, 국회의원, 검찰총장을 해먹은 이들은 텔레반의 부역자附逆者인가? 사람들을 잠시 멍하게 만드는 궤변이다.

기득권 엘리트의 과대망상이다

정치초짜 4인은 서울대를 졸업한 엘리트다. 사법고시를 합격하고 판사와 검사로, 박사학위를 받은 학자로 철저하게 기득권으로 살아왔다. 자의식과 자기확신이 지나친 나머지 자신의 허물을 돌아보지 못한다. 두 윤씨가 버럭 화를 내는 까닭이다. “(하찮은) 니들이 감히 나를 건드려?”하는 정신줄이다. 모든 것이 공작이고 음모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들만의 인식과 상식일 뿐이다. 그들이 보여준 설화와 기행은 한심한 수준이었다. 巧言令色鮮矣仁라 했던가. 말은 많지만 사실은 안개 속이다. 특권이 있을 뿐 책임이 없다. 진노震怒만 있을 뿐 백성을 향한 진심은 없다. 섬겨야 할 국민이 없기 때문이다. 진실을 호도糊塗하는 기자회견이 노여웁다. 

인용하기: 박헌명. 2021. 정치초짜 4인의 무엄한 기자회견. <최소주의행정학> 6(10): 1.

황교익은 무슨 죄를 지었나?

바야흐로 대통령선거철이다. 여야 후보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면서 각종 실언이 쏟아지고 있다. 찌르고 막는 자들의 사생결단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사실이든 아니든, 맞든 틀리든 전혀 개의치 않는 듯하다.

잠결에 날벼락 맞은 황교익

지난 13일 이재명씨가 음식평론가 황교익씨를 경기관광공사 사장으로 내정하자 여야 대선 후보들은 “보은인사”라며 비난했다. 그렇찮아도 이씨가 도지사직을 유지한 채 경선에 참여하는 것이 불공정이라며 시비를 걸던 터였다.

급기야 17일 이낙연 선거대책위원회 부대변인인 신경민씨가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황씨는] 일본 도쿄나 오사카 관광공사에 맞을 분이 아닌가 생각이 되요. … 일본음식에 대해서 굉장히 높이 평가하고 한국음식은 거기에 아류다…”라고 말했다. 관광공사는 커녕 맛집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고 깎아내렸다. 다른 관계자는 “경기맛집공사”라느니 누가 더 낫겠다느니 상처에 소금을 뿌렸다.

이에 황교익씨는 이낙연 후보측이 “일베”의 친일 프레임으로 자신을 공격했다고 분개했다. 짐승이나 하는 짓이라고 했다. 보은인사가 아니라 법절차에 따라 공개모집에 참여해서 최종후보로 선정되었다고 했다. 분을 삭이지 못했는지 친일 프레임을 반사한다면서 일본통으로 알려진 이낙연씨는 일본 총리에나 어울린다고 일갈했다. “청문회 전까지 이낙연의 정치적 생명을 끊는데 집중하겠다”고 적었다.

스카이가 아닌 중앙대를 졸업한 죄인가?

나는 방송에 나온 황씨의 반응을 보고 놀랐다.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리 흥분할까 의아했다. 이해찬 전대표가 나서서 격앙된 황씨를 위로하고, 황씨가 후보를 사퇴하면서 공방은 마무리되었지만 나는 혀를 차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정치권의 말폭탄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왜 애꿎은 일반시민(연예인에 가깝지만)에게 던진단 말인가?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은 셈이다. 황씨의 항거가 납득된다. 그런데도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았다. 방송에 출연한 신경민씨는 남 얘기하듯 어물쩍 넘어갔다. 여당 전체에 폭탄을 던진 어리석음을 반성하지도 사과하지도 않았다. 더 놀라운 것은 정치인이든 언론인이든 누구도 신씨나 이낙연씨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다. 송영길 대표도 황씨의 발언이 금도를 벗어났다고 말했지만 신씨의 발언은 문제삼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진보의 탈을 쓴 기득권의 힘자랑일까?

만일 신씨와 이낙연씨가 스카이를 졸업하거나 언론인을 거쳐 정계에 입문하지 않았다면, 황씨와 이재명씨가 중앙대학교가 아닌 스카이를 졸업했다면 어땠을까? 첫째, 보은인사 얘기는 애초부터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정언관政言官계를 장악한 스카이들이 지금까지 그렇게 해먹었기 때문이다. 음식평론이나 하는 “딴따라”가 무슨 사장이냐는 힐난은 핑계일 뿐이다(이런 식이면 “법나부랭이”들이 무슨 정치인이나 대통령이란 말인가). 둘째, 신씨와 이낙연씨는 “개비”들에게 처참하게 물어뜯겼을 것이다. 스카이 선후배 정치인, 언론인, 법조인 등이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어 조리돌리고 얼굴에 “非”라고 낙인을 찍었을 것이다. 반상의 법도를 뒤집는 역적을 가만둘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비개비”인 주제에 언감생심 개비의 밥그릇을 노렸다는 것이 황씨의 죽을 죄다.

욕설이라고 꼭 말폭력인가?

황씨의 발언 자체는 과한 것이 사실이다. 잠결에 날벼락을 맞은 억울함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짐승이라느니 정치생명을 끊겠다느니 하는 것은 일반 상식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하지만 신씨의 발언은 사실에 기초하지도 않았고, 의도하지 않았다 해도 황씨의 인격과 호구糊口를 뭉개는 폭력이었다. 인간의 최소한을 부정한 셈이다. 어쩌면 황씨의 대응은 인간으로 살기 위한 최소한의 저항일는지 모른다. 지금 상황은 강도가 칼을 들고 위협하다가 집주인에게 맞았는데, 경찰이 집주인을 살인미수라며 땅바닥에 패대기를 친 것이다. 알고 보니 강도와 기자와 경찰이 스카이인 상황이다. 그들은 황씨를 노리개로 쓰다 시궁창에 버린 것이다. 야만이다.

이재명씨가 형수에게 욕설을 했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씨는 어머니가 위협받는 상황이었다며, 위기를 모면하려다 벌어진 일이라며 양해를 구했다. 이런 물리력과 욕설을 맥락없이 떼어 내어 비난하는 것은 비열하다. 하지만 설훈씨는 녹음을 들어보면 이씨의 인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실망스럽다. 설씨였으면 그런 상황에서 법을 따지고 품격을 따졌을까? 공자왈 맹자왈 하면서 엄중하게 훈계질을 했을까? 설씨나 이낙연씨는 어머니가 죽든 말든 나는 절대로 욕설이나 주먹질을 안했다고 뿌듯해 할 것인가? 비폭력을 강조하신 함석헌 선생님도, 소정 선생님도 권력기관의 포악한 폭력질에 악다구니를 쓰셨다고 했다(2008: 401). 인간의 최소한을 지키기 위해 동원된 물리력과 욕설을 폭력이라 말할 수 없다.

비폭력은 법과 상식을 지키는 일이다

왜 이재명씨에게 지사직 사퇴를 요구하는가? 왜 양승조·최문순 지사에게는 요구하지 않았나? 국회의원은 왜 사퇴하지 않나? 지난 대선경선에 나섰던 홍준표·안희정 지사는 어떠한가? 성남시장이던 이재명에게는 왜 요구하지 않았나? 경남지사를 사퇴하고 욕먹은 김두관씨는 뭐란 말인가? 도대체 무슨 공정을 원하는가? 돈많으면 버리고, 잘생기면 망가뜨리고, 말잘하면 어눌해져야 하나?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대통령후보는 선거 90일 전까지 지사직을 그만둬야 한다. 이재명씨는 법대로 하면 된다. 원희룡씨가 제주지사를 사직한 것은 그의 맘이다. 하지만 “지사찬스”를 쓰지 말라고 이재명씨를 압박하는 것은 지나치다. 이씨에게 사퇴를 종용하는 평론가들도 마찬가지다. 말이 아니라 말폭력이다. 정말 후보가 공직을 유지하는 것이 불공정하다면 공직선거법을 비판하고 개정할 일이다. 선거와 관련한 불법행위가 있다면 법에 따라 처벌하면 될 일이다. 상식이다. 이재명씨를 둘러싼 시비에서 합당한 근거를 찾을 수 없다. 그냥 이재명이기 때문에 벌어진 말폭력이고 이전투구다. “비개비”여서 차별받는 서러움을 보여준다. 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기득권세력이 누군지를 똑똑히 보여준 패악질이다. 

인용하기: 박헌명. 2021. 황교익은 무슨 죄를 지었나?. <최소주의행정학> 6(9): 1.

조국의 최소주의와 윤석열의 검찰주의

조국대전이 발발한 지 2년이 되었다. 조국 교수가 법무부장관으로 지명된 2019년 8월 9일부터 장관으로 임명된 9월 9일을 지나 스스로 “검찰개혁의 불쏘시개”가 되겠다며 사퇴한 10월 14일까지 개혁세력과 기득권세력이 각각 서초동과 광화문을 달궜다. 조국과 윤석열은 양진영의 기싸움을 상징한다. 지금 조씨는 수렁에 빠진 자신과 식구들을 지키는데 사활을 걸고 있고, 조씨를 짓밟고 우뚝 선 윤씨는 정치인으로 변신하여 대통령이 되는 꿈을 꾸고 있다. 조국대전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조국의 전쟁과 최소주의

서해맹산誓海盟山으로 검찰개혁을 완수하겠다며 의욕을 불태운 조씨는 하루아침에 날벼락을 맞았다. 조폭 두목이 믿었던 행동대장에게 어이없이 난도질을 당한 느낌이랄까? 처자식은 물론이려니와 동생(조권)과 당질(조범동)과 주변 사람들(최강욱, 노환중 등)까지 처참하게 발렸다. “니가 어디까지 버티나 보자”며 계속 쑤셔댔다. 유시민씨가 규정했던 몹쓸 가족인질극이다.

검찰은 100여 군데를 압수수색하고 수사와 재판을 질질 끌면서 권력형 범죄, 가족사기단, 파렴치라는 낙인을 찍었다. 수구 야당과 기자들과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조씨 일가를 진창에 몰아놓고 마음껏 조졌다. 한 집안을 풍비박산風飛雹散낸 검찰과 수구세력의 기세에 지인들은 감히 조씨의 편에 서지 못했다. 양심을 거슬러 조씨를 외면하고 자기 목숨을 건사하기에도 바빴다. 조씨 식구들은 억울함과 미안함과 고립감으로 손발이 묶인 채 쏟아지는 주먹질과 발길질을 받아내야 했다. 지인을 원망하고 손가락질하는 자와 지인에게 버림받는 자 모두 인간성이 파괴되는 악랄한 짓이다. 수사가 아니라 인간 학대와 인격 학살이다.

이렇게 역적을 때려잡듯이 해서 기소한 정경심 교수의 혐의는 자녀입시, 사모펀드, 증거인멸에 관련한 15개였다. 조씨 자신은 자녀입시, 웅동학원, 딸장학금 등과 관련한 11개 혐의로 기소되었다. 말이 26개 혐의이지 사실 같은 사건을 이리 쪼개고 저리 쪼개고 해서 늘린 숫자다. 정말 눈이 나쁜 황새의 사냥법인가? 검찰은 입시 당사자인 조씨의 자녀는 정작 기소하지 않았다. 비열한 압박이다. 또 “조국펀드”로 자본시장법을 위반한 중범죄라며 열을 올렸지만, 그 바닥에서는 푼돈인 10억원으로 뭘 어쨋다는지 하품만 나온다. 권력형 범죄라더니 특수부 검사라는 자들이 인턴활동을 몇 시간 했는지, 학회에 참석했는지, 표창장이 위조되었는지를 따지고 앉아 있다. 설사 모든 혐의가 사실이라 해도 한심하기 짝이 없다.

조국 교수가 사법개혁을 말하지 않았다면 이런 사달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법무부장관으로 지명되지 않았다면 그의 식구들과 주변 사람들은 봉변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끝까지 사표를 내지 않았으면 더 많은 사람들이 인질로 끌려갔을 것이다. 또 조국이 아니어도 누구든 검찰을 건드리겠다는 자는 똑같이 만신창이가 되었을 것이다. 결국 검찰개혁을 추진한 것 자체가 죄라는 소리다. 사모펀드니 인턴증명서니 표창장은 다 핑계고 구실이다. 이래서 깨어있는 시민들이 서초동과 여의도에 몰려가 촛불을 든 것이다. 누구도 조씨 일가처럼 무자비하게 난도질당해서는 안된다는 공포와 분노다. 국민이 원하는 개혁을 거부하는 검찰에 대한 주권자의 노여움이다.

조씨의 지난 2년은 고난 그 자체였다. 수구 기득권 세력이 휘두르는 폭력을 참고 견디어 왔다. 그렇다고 대책없이 맞고만 있거나 꼼수나 폭력으로 맞서지 않았다. 자신과 식구들에게만 가혹한 검찰과 야당과 언론과 재판관에게 법과 상식과 사실과 논리로 대응해왔다. 외면받고 비난을 받는다 해도 꼭 해야 할 말을 멈추지 않았다. 감정을 누르고 “하나하나 따박따박” 법절차를 진행했다. 최소주의 비폭력이다. 조국의 전쟁이 그만의 전쟁이 아님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의 정치와 검찰주의

윤석열씨는 박근혜 정권에서 국가정보원 댓글사건을 수사하다 좌천되는 수난을 당했지만 검찰총장으로서 조씨 식구들이 누려야 하는 최소한의 인권을 지켜주지 않았다. 최소주의자의 품격이 아니다. 후보자의 자택을 기습奇襲으로 압수수색한 8월 27일, 윤씨는 박상기 장관을 만나 조씨의 낙마를 요구했다고 한다. 장관에게 보고도 하지 않고 임명권자에게 무력시위를 한 셈이다. 누가 뭐래도 자기 멋대로 찔러대는 낭만자객의 만용蠻勇이다. 장관도 대통령도 발 아래에 둔 자의 눈에 조후보자가 보였을 리 만무하다. 시퍼런 서슬은 스스로 참지 못하고 최소한 지켜야 할 선을 넘었다. 본인이 확신했던 사모펀드 혐의는 최근 대법원 판결로 허물어졌다. 윤씨의 칼베기는 성급했고, 난폭했고, 과했고, 허무했다.

반면에 윤씨는 검찰조직과 자기 식구들에게는 끔찍했다. 검찰의 칼날은 균형을 잃었다. “별장 성접대” 동영상을 보고도 두 차례나 김학의를 불기소 처분했던 자들이 김씨의 출국을 막은 절차를 문제삼았다. 한명숙 전총리 사건과 관련한 모해위증교사는 끝끝내 무혐의로 처분했다. 장관의 수사지휘도 위증처벌을 감수하겠다는 증언도 법공작에 묻혔다. 집요한 자기식구 감싸기가 눈물겹다. 윤씨는 자신에 대한 직무정지와 징계에 반발하여 집행정지와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법기술이다. 윤씨 배우자와 장모에 관련한 사건은 의혹만 남긴 채 진전되지 못했지만, 추미애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발동하자 6년 전에는 입건조차 되지 않았던 장모가 한달 전 징역 3년형을 받고 법정에서 구속되었다. 윤씨가 어떻게 검찰권력을 활용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윤씨의 대권 도전은 오래된 권력욕의 정점으로 보인다. 그의 “보스기질”은 조국대전에서 확인한 반문수구세력의 지지를 계기로 야망이 되어 불타올랐다. 상관을 멋대로 치받을수록 박수를 받는 재미에 홀닥 빠진 것이다. 이명박근혜 정권이었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갔을 일 아니던가. 무서운 세상이 아님을 깨달은 기회주의자들이 우후죽순으로 삐져나온 것이다. 갈 곳 없는 수구들의 울분과 저주에 편승한 것이다.

윤씨는 법깡패들의 칼잡이로서 꽤 괜찮았는지는 몰라도 정치인으로서는 햇병아리다. 그는 문재인 정권이 국민을 약탈하는 독재라고 비난했다. 검찰총장이었던 자신은 약탈과 독재를 눈뜨고 보고만 있었단 소린가? 얼마 전 한국이 5년 만에 완전한 민주주의로 복귀했다는데, 무슨 뚱단지같은 소리인가? 윤씨는 지지자들에게 공정과 법치를 약속했다. 과연 조국 수사, 김학의 사건, 한총리 사건은 공정하고 정당한 법집행이었을까? 배우자와 장모에게 그토록 자비롭게 처리되었던 사건들은 정말 우연일까?

윤씨는 과격하거나 민심과 동떨어진 발언으로 설화를 자초했다. 후쿠시마 오염수, 세금을 나눠줄거면 안걷어야, 다른 지역이었으면 민란, 주 120시간이라도 일하고, 이한열 앞에서 부마항쟁 등은 참담한 수준이다. 말할 필요가 없는, 하지 말아야 할 말이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분별하지 못하고 난사하자 지지자들이 나자빠지고 있다. 좌충우돌하며 구세력들과 선문답을 섞더니 압수수색하듯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그의 정치 “지평선”이 이승만-박정희-전두환-이명박근혜를 꿰뚫는 수구기득권이라는 선언이다. 역사인식과 정치감이 가난한 낭만자객의 한계다. 그래서 조국을 바르고 청와대를 들이받은 것일까? 하지만 상처투성이 조국이 뚜벅뚜벅 돌아오고 있다. 윤씨는 다 잊었다지만 이제 어찌할 것인가? 

같이 읽기

인용하기: 박헌명. 2021. 조국의 최소주의와 윤석열의 검찰주의. <최소주의행정학> 6(8): 2.

재난지원금이 아니라 방역사례금이다

정부가 지난 달 24일 국무회의에서 제 2차 추가경정예산안을 확정했다. COVID-19와 관련한 재난지원금과 소상공인 보상금이 포함되었다. 이른바 “국민지원금”은 맞벌이와 1인가구를 포함하여 소득수준 8할 이하에게 1인당 25만원씩 지급하고, 저소득층에게 10만원을 추가로 지급한다. “소상공인희망복지금”은 방역 조치로 입은 피해에 대하여 최대 2천만 원을 지급하고, 앞으로 발생하는 손실을 보상한다. 늦었지만 결론을 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보편과 선별이 아니라 목적을 물어야 한다

나는 정치권이 보편이니 선별이니를 두고 실랑이를 벌이는 것이 못마땅하다. 목적에 따라 방법을 달리하면 되는 일인데, 목적은 따지지 않고 방법을 두고 옥신각신하고 있으니 한심하다. 길어진 방역으로 지치고 배고픈 민생을 달래기보다는 정치득실을 따지며 이전투구하는 꼴이라니…

소상공인을 위한 지원과 보상은 그 자체로 선별이다. 누구를 소상공인으로 정의할 지, 방역 조치로 인한 손해를 어떻게 추정할 것인지가 핵심 과제다. 형평성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구청, 국세청, 국민건강보험공단 등이 객관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경기부양이 목적이면 신용카드, 현금, 상품권 별로 정부지원금의 효과를 철저하게 따져봐야 한다.

국민지원금은 “코로나19 장기화로 어려움을 겪는 국민들에게 지급”한다고 했다. 그런데 어떻게 대상을 정의할 것인가? 가구원수와 맞벌이가구를 고려하여 6월 건강보험료 본인부담금 합산액이 80 percentile 이하(고액자산가 제외)로 기준을 정했다. 예컨대, 5인 외벌이가구 지역가입자는 합산액이 42만 3백원 이하여야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정의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첫째, 경계에 있는 가구를 납득시키기 어렵다. 왜 79%는 되고 81%는 안되는가? 왜 7할이나 9할이 아니라 8할인가? 둘째, 코로나19 장기화로 어려움을 겪는지 아닌지를 건강보험료로 결정할 수 있는가? 80% 이하는 나이, 직업, 지역에 상관없이 전부 어려움을 겪고, 그 이상은 어떤 경우든 어려움을 겪지 않는가? 아무렴 코로나19가 부자와 사장과 장관을 알아보겠는가? 모두에게 지급하지 않는 한 이런 논란은 피할 수 없다.

하지만 본질적인 질문은 보편이냐 선별이냐가 아니다. 왜 정부가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주는가? 재난을 당하여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말하자면 구휼미救恤米를 풀겠다는 것 아닌가. 그러니 부자에게는 구휼미를 주는 것이 가당키나 한가? 정부가 기준을 정했으니 군말 말고 줄이나 똑바로 서라. 관료주의의 완장질이다. 이런 발상이라면 기준을 더 낮춰야 한다.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죽을 지경이라면 사실상 빈민이니 대략 20%면 족할 것이다. 건강보험료를 40만원 넘게 내는 5인 가구가 굶어죽게 되었으니 구휼미를 달라면 말이 되는가?

구휼미가 아니라 정당한 사례금이다

먼저 재난의 성격을 따져보자. 자연재난은 화산, 지진, 산불, 폭풍, 해일, 홍수, 가뭄 등으로 발생하는 재해다. 사람은 자연재해를 막을 능력이 없기 때문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물론 포항지진처럼 인재人災에 가까운 경우도 있지만 자연재해는 잘잘못을 따질 수 없다. 다만 재난을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 어떻게 사람들을 구하고 일상을 회복시켜줄 것인가를 따질 뿐이다.

사회재난은 화재, 환경오염, 전염병 등으로 인한 피해를 말한다. 전염병은 인간의 지식 수준에 따라 통제불가능하기도 하다. 14세기 유럽을 휩쓸던 흑사병이 그러하다. 당시 인간은 흑사병의 원인도 속성도 몰랐기 때문에 미신과 주술에 매달리다 속절없이 1억명이 목숨을 잃었다. 왕조시절 역병이 발생하면 흔히 해당 지역을 폐쇄하고 집이며 사람이며 짐승을 모조리 불태워 없앴다. 접촉하면 전염되어 죽는다는 것 외에 아는 것이 없으니 궁여지책이었다. 귀신의 저주를 경외하고 하늘을 원망하고 임금을 책망할 뿐이었다.

하지만 인류는 신종 바이러스인 코로나19로 인한 폐렴의 원인과 증상과 속성을 단시간에 알게 되었다. 중국 안과의사 李文亮(Li Wenliang)의 살신성인 덕분이다. 코로나19가 전염되는 과정을 이해하게 되면서 사람 간 접촉을 피하고, 마스크를 쓰고, 환기와 소독을 자주 하면 감염위험을 줄일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제 백신을 생산하여 접종을 하고 있고,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코로나19가 과거 페스트균과 달리 인간이 통제할 수 있으며, 이는 사회구성원이 서로 접촉을 줄이고 개인위생에 철저할 때 가능하다는 점이다. 나의 부주의한 행동이 간접적으로(누구도 모르게) 많은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외부성(externality) 때문이다. 타인을 배려하는 시민들의 의식과 참여와 실천이 중요하다. 지금까지 이른바 K-방역이 성공한 것은 지도자가 과학(의학)에 기반하여 판단을 내렸고, 해당 공무원과 의료진이 방역에 헌신했고, 국민들이 방역 조치에 비교적 잘 따라주었기 때문이다.

자연재난과는 달리 코로나19 방역에서는 공과를 따질 수 있다. 급여를 받는 공무원과 의료진은 그렇다손 쳐도 방역에 적극 동참한 국민들의 공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영업시간을 줄이고, 손님 간 거리를 유지하고, 마스크를 쓰고, 외출을 삼가고, 환기를 하고, 손소독을 철저히 하는 것 하나하나는 일상의 일이지만 가장 큰 방역이라 할 수 있다. 최근 델타변이가 크게 유행하는 상황에서 국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실천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따라서 공동체를 위해 방역 조치를 따라준 국민 모두에게 사례謝禮해야 한다. 불쌍하니 굶어죽지 말라고 구휼미를 줄 것이 아니라 공로를 인정하고 포상해야 한다. 공동체의 주인 스스로 오랫동안 참고 견디어낸 것을 서로 위로하고 치하하고 격려하는 것이다. 정부가 시혜를 베푼다는 투의 “재난지원금”이나 “국민지원금”이 아니라 주권자의 당연한 몫인 “방역(협조)사례금”이나 “방역(실천)격려금”이 되어야 한다. 또한 정기적으로 지급해야 한다.

구태여 선별을 한다면 소득수준이 아니라 방역 조치를 잘 따랐는지를 따져야 한다. 영업시간을 어기거나, 집합금지나 개인거리를 지키지 않거나, 마스크를 쓰지 않는 등의 위반자를 가려내야 한다. 부자든 서민이든 공동체를 배신하는 행위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인내하고 실천하는 시민 의식이 절실해진 상황이다. 

같이 읽기

인용하기: 박헌명. 2021. 재난지원금이 아니라 방역사례금이다. <최소주의행정학> 6(8): 1.

공무원의 윤리와 윤석열·최재형의 처신

바야흐로 대선 정국이다. 여권에서는 이재명, 이낙연, 추미애 등이 각축을 벌이고 있다. 야권에서는 검찰총장 자리를 박차고 나온 윤석열과 감사원장을 그만두고 15일 만에 제1야당에 들어간 최재형이 앞서고 있다. 터줏대감인 홍준표와 유승민은 쑥스럽게도 순위에서 밀려나 있다. 나는 등락하는 지지율보다도 고위직 공무원이 몸담았던 정부를 비난하고 대권에 나선 것이 신경쓰인다. 법규정이 아니라 직업공무원의 책무와 윤리와 처신을 말하고 싶다.

직업공무원의 올바른 처신이 아니다

검찰총장과 감사원장은 정치중립을 위해 임기가 보장된 자리다. 윤석열과 최재형씨가 얼마 남지 않은 임기를 채우지 않고 대선출마를 위해 (건강문제 때문이 아니라) 사직서를 던진 것은 무책임하다. 이들이 대선출마를 어느날 갑자기 결정했을 리는 만무하다. 그동안 윤씨와 최씨가 벌여온 정부와 여당 인사들에 대한 조사와 감사의 순수성이 의심받게 되었다. 정당한 직무수행이라기보다 출마용 실적쌓기였다는 비난을 피할 길이 없다. 정치중립을 염불念佛처럼 외던 검찰청과 감사원 구성원들은 난감하고 민망할 뿐이다.

더군다나 두 사람의 화두는 아무리 정치인의 수사라 해도 지나치다. 윤씨는 부패하고 무능한 문재인 정권이 권력을 사유화하여 국민을 약탈하고 있다고 일갈했다. 상식과 공정과 법치를 내팽개치고 나라의 근간의 무너뜨렸다고 했다. 문정권을 독재와 전제로 낙인찍은 제1야당과 같은 문법이다. 최씨도 문정권이 헌법과 법률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고 비난하고 헌법정신을 회복하고 법치주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했다. 문정권이 저지른 일탈과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려놓겠다는 황교안씨의 변과 궤를 같이 한다.

하지만 윤씨와 최씨의 언행은 모순이다. 정말 현정권이 헌법과 법률을 무시하고 국민을 약탈한 것이 사실이라면, 그동안 검찰총장과 감사원장은 뭐하고 있었단 말인가. 바로 그 정권에서 사정기관을 책임졌던 자들이 이제 와서 남 얘기하듯 부패하고 무능한 정권이라며 물어뜯는 것이 합당한 일인가? 먼저 검찰과 감찰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자신의 무능력과 무책임을 참회해야 할 일 아닌가?

멀쩡한 검찰총장이었으면 불법을 저지른 자라면 국회의원, 장관, 국무총리를 가리지 않고 모조리 잡아들였을 것이다. 헌법정신을 위반한 물증이 명백하다면 국회의 탄핵과는 별개로 즉시 청와대로 들이쳐서 대통령과 참모들을 오랏줄로 묶어왔을 것이다. 헌법이 무너지고 법치주의가 망가지고 있는데, 검찰총장이라는 자가 대통령의 눈치나 보고 장관들과 티격태격한대서야 말이 되는가. 설령 독재자가 검찰의 정당한 법집행을 군홧발로 진압한다 해도 일말의 후회도 없을 것이다. 오직 국민을 바라보는 “바보 칼잡이”였다면 말이다. 전두환의 군사반란에 맞섰던 수도경비사령관 장태환과 특전사령관 정병주처럼 말이다. 하지만 윤씨는 소심한 “낭만 자객”이었다. 최씨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를 따르지 않았다면 강도높은 감찰을 벌여 위법 행위를 낱낱이 파헤쳐야 했다. 감사원장과 국무총리로서 김영삼씨와 대립한 이회창씨처럼 강제로 자리에서 쫓겨난다 해도 본연의 직무에 충실했야 했다. 하지만 윤씨의 감사원이 시끄럽게 소동을 벌이면서까지 적발한 내용은 용두사미에 가까왔다.

더구나 해먹을 만큼 다 해먹고 나서 정략에 따라 약탈과 비정상을 운운하는 것은 속보이는 짓이다. 궁색한 변명이다. 윤씨와 최씨가 여당의 비난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결국은 그들이 하고 싶은 대로 다 했다. 청와대를 압수수색했고, 조국 전장관 식구들을 마음대로 발랐고, 탈원전 정책 감사도 밀어붙였다. 청와대든 국가정보원이든 훼방을 놓지도 않았고 거대 여당은 탄핵으로 몰고 가지도 않았다. 이렇게 물러터진 독재와 전제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박정희나 전두환 정권이었으면 모가지가 수백 개라 한들 살아남지 못했을 일이다. 어디 감히 검찰총장이나 감사원장 따위가… 아마도 빨갱이나 반역자로 몰아 식구들까지 매장시켰을 것이다. 무서운 독재시절이 아님에 기회주의자들이 이리 고개를 쳐드는 것이다.

윤씨와 최씨는 최소주의자가 아니다

윤씨와 최씨의 출마에 감동이 없는 이유가 있다.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검사와 판사로 살아온 사람이다. 이 사회의 기득권을 상징하는 인생을 누린 사람이다. 독재정권에 맞서다 끌려가 매맞고 오욕을 당하거나 서민으로 살면서 차별받고 무시당하고 억울했던 기억이 없는 사람이다. 고문으로 몸서리치던, 저승문턱에서 오금이 저리던 추억이 없는 자들이다. 꽃길을 걸어온 자들은 고난 속에서도 끝까지 참고 버틴 최소주의자의 무게를 가늠하지 못한다. 벼랑 끝에 내몰려서 인간으로서 존재마저 부정당하는 마지막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국 식구들을 난도질한 칼솜씨나 절차와 방법을 따져 정책 자체를 비틀어대는 법기술은 최소주의자의 품격과 거리가 멀다. 작심하고 휘두른 그 칼과 법날이 멀리 돌아 자신을 향해 돌아오고 있음을 아는지…

그들에게는 기득권의 초상이 있을 뿐 애초부터 긍휼해야 할 시민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의 기득권을 인정하지 않고 적폐로 모는 것이 반헌법이고 불법이고 불공정이고 몰상식이고 비정상이다. 그동안 윤씨가 남긴 설화는 그의 인식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지를 보여준다. 최씨의 서민 행보는 흙묻은 오이를 입에 넣은 이회창씨의 억지스러움이다. 윤씨와 최씨가 현정권을 반헌법 독재정권으로 규정하고 정의와 상식과 정상을 말하는 것이 허무한 까닭이다. 지금껏 호의호식하고서 마치 정권의 핍박을 받은 것처럼 떠벌리고 마음에도 없는 “국민팔이”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여권은 윤씨와 최씨가 임명권자를 배신했다고 비난했지만 틀린 얘기다. 사정기관은 의리가 아니라 불법탈법을 따질 뿐이다. 무작정 권력자를 때려잡으라는 칼도 아니다. 그들은 직무를 유기하고 권한을 남용하여 사리사욕(정치이익)을 채운 탐관오리였을 뿐이다. 주변의 부추김에 홀린 듯 끌려 나와서 엉겁결에 숨겨왔던 욕망을 드러낸 것이다. 박수 소리가 잦아들면 미련없이 링에서 내려올 자들이다. 모냥 빠지는 것을 참지 못하는 부류이기 때문이다. 간절한 민심이 아니라 영웅의 이름을 구하는 족속의 숙명이다. 

같이 읽기

인용하기: 박헌명. 2021. 공무원의 윤리와 윤석열·최재형의 처신. <최소주의행정학> 6(7): 1.

정경심 PC의 IP주소와 알리바이

검찰은 2019년 9월 6일 조국 교수의 법무무장관 인사청문회가 열리고 있는 시간에 배우자인 정경심 교수를 기소했다. 총장이름으로 나가는 표창장을 위조한 혐의라지만 피의자를 조사하지도 않고 한밤중에 재판에 넘긴 것은 상식과 거리가 멀다. 검찰은 정교수에게 자본시장법과 금융실명법 위반 등 14개 혐의를 씌워 기어코 구치소로 보냈다. 언론보도에 비친 조국 내외는 반역죄를 저지르고도 반성하지 않는 파렴치한이다. 하지만 “차고도 넘친다”는 검찰의 증거는 1심 재판에서 대부분 허무하게 무너졌다. 다른 것은 몰라도 총장 표창장 위조에 관한 검찰의 설명과 법원의 판단은 한마디로 어이가 없다. 사실에 근거한 증거 제시와 과학적인 추론이라 할 수 없다.

IP주소가 뭐길래?

검찰은 동양대에서 압수한 PC에 저장된 IP (Internet Protocol) 주소를 근거로 정교수가 2013년 6월 방배동 자택에서 표창장을 위조했다고 주장했다. IP주소는 네트웍에 연결된 장치(예컨대, 컴퓨터, 프린터, 스마트폰, 라우터)를 인식하기 위해 장치에 부여되는 번호다. IPv4는 8비트(0~255) 네 개를 붙여서 만든 번호체계로 최대 43억개 주소를 정의할 수 있다. IP주소는 특정 번호로 고정될 수도 있고(포트에 번호가 지정되어 있고), DHCP (Dynamic Host Configuration Protocol)가 그때그때 다른 번호를 할당할 수도 있다. 서버를 운영하려면 고정 IP주소가 필요하고, 대부분(정교수의 PC 포함)은 효율성이 높은 변동 IP주소를 사용한다.

ICANN에서 관리하는 공인 IP주소는 전체 인터넷에서 고유한 번호로서 Public 혹은 Global 주소라고 하고, 개별 네트워크(흔히 LAN)에서만 고유한 IP주소는 Private 주소라고 한다. 정교수가 라우터(Router)를 통해 PC를 연결했다고 하는데, 이는 라우터의 DHCP에서 사설 IP주소를 할당받았다는 뜻이다. 검찰은 192.168.123.xxx라고 했다. 정교수가 LG U+ 제품을 사용한 듯하다.

IP주소로는 위치를 알 수 없다

인터넷에 연결되는 장치가 많아짐에 따라 IPv4로는 감당하지 못하고, 16비트 여덟 개를 붙인 IPv6는 호환성 문제로 널리 사용되지 못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IP주소를 전환해주는 NAT (Network Address Translation) 기술이 대안이 되었다. 라우터의 NAT는 PC에서 외부로 신호(패킷)를 보낼 때 사설 IP주소를 공인 IP주소(라우터의 IP주소)로 변환하고, 외부에서 PC로 정보를 받을 때는 공인 주소를 사설 주소로 바꾸어준다. 따라서 똑같은 사설 IP주소가 동시에 다른 네트웍에서 사용될 수 있다. 한 네트웍 안에서만 고유한 번호라면 상관없다.

결론적으로 변동 사설 IP주소로는 PC의 위치를 특정할 수 없다. 검찰이든 변호인이든 마찬가지다. 내 PC의 사설 IP주소는 192.168.50.xxx이다. 여긴 방배동도 동양대도 아니다. 지리적 위치와 무관하게 제조사(Asus)가 정한 주소체계일 뿐이다. 이 라우터를 사용하는 한 세계 어디에서 접속하든 같은 IP주소(범위)를 받는다. 게다가 IP주소를 변조하여 서버를 속이는 방법도 있다.

MAC 주소는 좀 다른가?

검찰은 윈도우를 재설치하기 전과 후의 MAC (Media Access Control) 주소가 같으니까 PC가 방배동에 있었댄다. 황당하다. MAC주소는 제조사에서 네트웍장비(Network Interface Controller)에 물리적으로 적어놓은 고유번호다. MAC주소가 같다는 것은 그 PC의 네트웍카트를 빼내지 않았다는 뜻이지, 방배동인지 아닌지와는 무관하다.

그러면 어떤 조건에서 IP주소나 MAC주소로 장치의 위치를 알 수 있을까? 첫째, 잘 관리된 고정 IP주소를 사용해야 한다. IP주소를 지정하는 부서에 가면 정확한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둘째, 서버가 라우터의 공인 IP주소, 할당된 변동 IP주소, MAC주소를 같이 저장해놓았다면, 특정한 시간에 어느 장치가 어느 변동 IP주소로 작업했는지를 알 수 있다.1) 하지만 이런 네트웍 환경을 가진 경우는 흔하지 않다. 인터넷서비스회사(ISP)나 구멍가게 수준에서 이런 정보를 관리할 가능성(수익성)은 거의 없다.

컴퓨터를 좀 한다는 사람이라면 아는 사실을 검찰이 몰랐을 까닭이 없다. 이런 사실을 확인하지 않고 검찰의 억측을 받아들인 1심 재판부의 저의가 의심스럽다. 정말 방배동 주소가 적혀있는 줄로만 믿었을까?

최성해의 거짓말이 증거다

인사청문회가 열리기 하루 전(참으로 절묘한 시기다) 검찰에 출석한 당시 동양대학교 총장 최성해씨는 조국 교수의 딸에게 표창장을 발급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일정한 일련번호를 부여받아야 하고 발급기록이 보관되기 때문에 총장 자신도 모르게 표창장이 발부될 수 없다고 했다.

검찰청을 나오면서 해맑게 교육자의 양심을 선택했다는 최씨를 보면서 나는 혀를 찼다. 정말 기억력이 좋아서 수년 전 발급된 표창장까지 다 꿰고 있단 말인가? 총장이 일련번호가 어떻게 생겼는지, 발급절차가 어찌되는지, 어떻게 기록이 보관되는지 시시콜콜 다 알고 있었단 말인가? 학과나 연구소에서 요청하는 표창장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일련번호와 형식은 물론이고 기록을 관리하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실제로 일련번호 형식이 서로 다른 동양대 총장 표창장이 여러 개가 발견되었다.

뉴스에 나온 최씨를 보면서 나는 2007년 학력위조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신정아씨를 떠올렸다. 그녀는 공항에서 출국하면서 예일대 박사학위를 증명하겠다며 기염을 토했다. 나는 아연啞然했다. “아니 어떻게 본인 스스로가 박사학위를 증명한단 말인가? 지도교수와 심사위원이라면 모를까… 정말 박사과정 공부를 한 적이 없는 사람이군…” 최씨도 학위 5개 중 3개가 가짜로 드러났다. “교육학박사 최성해”가 찍힌 표창장 자체가 허위라는 것 아닌가.

가짜박사와 법쟁이들의 비양심

가짜박사의 인터뷰를 본 소감은 (1) 총장 노릇을 제대로 못한 사람이다(동양대의 학사가 엉망이다), (2) 당시 정황으로 보면 최씨는 정교수의 딸에게 표창장을 발급해 주었는지 아닌지를 잘 알고 있다, (3) 발급해 주었는데도 아니라고 말했을 가능성이 크다. 평소 며느리감이라며 애지중지하던 사람에게 표창장이 아니라 명예박사인들 아깝겠는가. 지금은 관계가 틀어졌지만서도.

정말 최씨가 표장장에 대해 몰랐다면 일련번호나 장부를 운운하지 않았을 것이다. 검찰에 가기 전에 살펴보고 계산을 했다는 뜻이다. “교육자의 양심”은 1999년 옷로비 사건 때 “성경에 손을 얹고 맹세할 수 있다”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양심있는 사람은 무겁게 진실을 말할 뿐 속보이는 소리를 하지 않는다. 최소주의와 거리가 멀다.

나는 표창장이 위조되었는지 아닌지 모른다. 다만 검찰과 최씨의 주장이 사리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기소하고, 사실과 과학은 외면하고, 증인과 언론을 동원하여 망치를 두드린다면 판검사 편에 서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가 없다. 동양대 표장장이 뭐길래 이 난리인가? 과연 한 집안을 풍비박산 낼 일인가? 법쟁이와 가짜들의 양심에 모진 털이 무성하고, 백성들의 이성과 상식은 아파서 울고 있다. 

끝주

1) 인디애나대학교에서 컴퓨터를 네트웍에 연결하면 서버는 컴퓨터의 MAC주소를 읽어서 사용자 데이타베이스에 등록되어 있는지를 확인한다. 목록에 없으면 사용규정에 동의하고 10분 이상 기다렸다가 다시 접속하라고 한다. 서버가 누가, 언제, 어느 장치(MAC주소)를, 어느 변동 IP 주소로, 어디서(대강의 위치), 얼마동안 사용했는지를 기록하고 있다는 얘기다.

같이 읽기

인용하기: 박헌명. 2021. 정경심 PC의 IP주소와 알리바이. <최소주의행정학> 6(6): 2.

웹포탈의 알고리듬은 그들의 욕망이다

네이버와 다음을 통해 제공되는 뉴스의 편향성이 화두다. MBC의 <스트레이트>에 따르면, 뉴스가 노출된 위치, 빈도, 기간 모두 수구언론사의 기사가 압도하고 있다. 이에 국내 웹포탈(Web portal) 업체인 다음과 네이버는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의 알고리듬(algorithm)이 한 일이라고 둘러댔다. 사람이 한 것이 아니라 컴퓨터가 한 일이니 공정하고 정확하다는 항변일 것이다. 박정희시절 세금문제를 따지는 민원인에게 국세청 직원이 퉁명스럽게 “컴퓨터로 출력했다”며 훈계했다는 얘기가 떠오른다.

알고리듬이 바로 인간의 마음이다

그저 웃음이 나온다. 인공지능의 알고리듬이 어디 하늘에서 떨어지기라도 했단 말인가? 이른바 기계학습(machine learning)이나 심층학습(deep learning or hierarchical learning)과 같은 아리송한 말로 사람들을 홀리고 있지만 진실은 간단하다. 신경망이든 양자 알고리듬이든 인간의 지능을 조금이라도 더 닮을 수 있을까, 어떻게 사람처럼 배울 수 있을까 하는 몸부림이다. 컴퓨터는 인간을 거울처럼 비치고 있다. 인공지능(알고리듬의 집합체)은 제작자의 마음과 의도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아무리 처리속도가 빨라지고 저장능력이 커졌다 해도 사람이 만든 기계일 뿐이다. 인간의 마음과 의도를 반영하지 않는 기계는 아무리 우수해도 실패작이다. 부수어지고, 버려지고, 다른 기계에 끼워질 운명이다.

데이타가 운명을 좌우한다

둘째, AI는 철저하게 데이타에 의존한다(data-driven). 알고리듬의 논리구조에 따라 데이타를 분석하여 대상의 특성치(parameters)를 수정해 나간다. 이것이 학습이다. 따라서 규모가 크고 다양하고 믿을 만한 데이타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 하지만 쓰레기를 입력하면 쓰레기가 나올 뿐이다. 아무리 수퍼컴퓨터에 초대형 데이타(big data)를 넣어 돌린다 해도 마찬가지다. 전통적인 확률이나 회귀분석을 P(y|θ)라고 표현한다면, Maximum Likelihood (ML)나 Baysian 회귀분석은 조건부 확률인 P(θ|y)라고 말할 수 있다(King 1998: 14-18). 여기서 y는 데이타이고 θ(theta)는 특성치가 포함된 모델이다. AI는 주어진 데이타에서 특성치를 수정하면서 찾아가는 베이지안 방법을 취하고 있다. ML이든 베이지안이든 특성치의 운명은 전적으로 데이타에 달려있다.

네이버와 다음이 웃기고 자빠졌다

웹포탈의 인공지능이 바로 그들의 의지다. 알고리듬이 한 것이 아니라 바로 네이버와 다음이 한 짓이다. 거울에 비친 자신에게 “니가 했지?”라고 손가락질하고 있다. 하지만 반드시 문재인 정권을 흔들고 말겠다는 웹포탈의 의도라기보다는 그들의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욕망이다. 돈을 벌기 위해 클릭수와 노출시간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포탈의 셈법이다. 그들의 알고리듬은 이런 의도에 충실할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실과 상관없이 독자를 유혹하는 기사를 백미터 경주하듯 쏟아내야 하는 기자들의 강박이 있다. 기사를 쓰느라 취재할 시간이 없다는 황당한 푸념이다.

웹포탈의 인공지능이 뉴스내용을 이해하고 평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AI의 학습은 진위를 판단하고 문맥을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패턴을 찾아 연결(추론)하는 것이다. 알파고가 바둑을 두는 것이 아닌 것처럼 AI는 기사를 읽는 것이 아니다. 컴퓨터는 단지 주어진 논리구조에서 계산을 굉장히 빠르게 할 뿐이다. 사람들은 경이로운 계산능력을 지식능력으로 착각하고 있을 뿐이다. 둘째, 뉴스 자체가 새로운 것이기 때문에 과거 데이타에 의존하는 AI는 쓸모가 별로 없다. 주가를 예측한다는 AI가 허무맹랑한 까닭이다. 입력된 데이타가 없으면 나올 것이 없고, 적으면 정확성과 신뢰도가 떨어진다. 그래서 알파고가 이세돌의 변칙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결국 웹포탈의 뉴스편집은 인공지능이 아닌 AI를 가장한 “인공직원”의 작품이다. 미끼상품을 골라 진열하는 일이다

정말 웹포탈이 인간의 역사, 정치, 사회, 문화, 종교 등을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는(더이상 데이타가 필요없이 정확한 θ값을 알고 있는), 그러면서 엄청난 계산능력을 장착한 인간을 구현해 냈다면, 이 알고리듬은 인류역사를 바꿀 수 있는 “제왕의 반지”다. 네이버와 다음이 불확실성(uncertainty)을 통제할 수 있다는 뜻이고, 세상을 지배한다는 의미다. 이자율과 주가를 예측할 수 있으니 온세상의 뭉치돈은 다 그들의 차지가 될 것이다(주가예측 AI를 광고한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그런 AI는 꽁꽁 숨겨놓고 혼자만 사용해서 돈을 긁어모을 일이다). 대통령, 국회의원, 법관, 검사, 경찰, 종교인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주무를 것이다. 네이버와 다음은 웹포탈 시장의 푼돈이 아니라 전 세계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도 불사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걱정은 붙들어 매시라. 그들의 “수동 알고리듬”은 고작 문재인 정권을 흠집내고 낙인찍으려는 기사를 골라내고 있다. 한미정상회담을 해리스 부통령이 문대통령과 악수한 손을 닦은 것으로 요약하는 수준이다. 앙증맞지 않은가.

네이버와 다음은 뉴스에서 손을 떼라

웹포탈과 언론사의 거래와 상술에 기자들은 노예가 되고, 시민들은 불량기사를 습관처럼 보면서 매출을 올려주고 있다. 클릭수와 노출시간에 쫓긴 기레기는 이제 모이를 쪼아대는 닭처럼 쉴새없이 글쇠판을 두드리는 “계자鷄者”가 되었다. 수구세력이 지배하는 언론지형에서 AI의 편파성은 놀라운 것이 아니다. “Garbage in, garbage out”이라 했다. 시민들이 포탈이 골라주는 쓰레기를 생각없이 받아먹으면 거짓과 왜곡으로 꾸며진 메아리방(echo chamber)에 스스로를 가두게 된다. 허상에 중독되고 편파성이 강화된다. 사실 AI의 알고리듬을 공개하냐 마냐는 본질이 아니다. 포탈이 뉴스장사를 못하도록 해야 한다. 방송이든 신문이든 날조기사는 엄중히 처벌해서 퇴출시켜야 한다. 무엇보다도 깨어있는 시민 스스로가 진위를 따지고 진실을 밝히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참고문헌

  • King, Gary. 1998. Unifying Political Methodology. Ann Arbor, MI: The University of Michigan Press.

같이 읽기

인용하기: 박헌명. 2021. 웹포탈의 알고리듬은 그들의 욕망이다. <최소주의행정학> 6(6): 1.

경우없는 셈법과 납세와 사면

가끔씩 소정 선생님께서 사용하신 독특한 말글이 생각난다. “경우境遇”라는 표현이 있다. 사리나 도리에 부합하면 “경우가 맞다(옳다)”라고 하고, 아니면 “경우가 아니다”라고 한다. 어른들이 흔히 “경우가 바른(밝은) 사람” “경우없는 사람” 등으로 말씀하시곤 했다.

“경우에 맞는 성장”

소정 선생님은 <샘터> 1972년 7월호에 “경우에 맞는 성장”이라는 글을 쓰셨다. 대학졸업 후 취직을 하면 자신을 보살펴 준 부모나 식구들에게 먼저 값(학비)을 치르고 남은 돈으로 자기 생활을 꾸려야 한다. 취직턱으로 생색이나 내고 용돈을 좀 드리는 것은 경우에 맞지 않다. 셈이 틀렸다는 얘기다. 선생님은 자신이 마땅히 치러야 할 것을 제대로 치르고 나서 자기의 몫을 늘려 나가는 모습을 개인이나 국가에서 보고 싶다고 적었다(1986: 62). 신랑신부에게는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으되 세금은 꼭 제대로 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이 말씀을 오랫동안 곱씹어 생각했다. 치러야 할 값을 제대로 치른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요즘처럼 이 말씀이 가슴을 파고 든 적은 없었다. 한마디로 경우가 없는 언행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신문과 방송과 인터넷을 보기가 겁이 난다. 사실판단은 물론이려니와 듣는 것 자체가 고역이다. 말이 아니라 고문이고 폭력이다. 가장 힘든 것은 경우없는 짓거리가 널려 있는데도 경우를 따지지 않고, 경우가 바른 언행인데도 경우없는 짓으로 매도되는 일이 계속된다는 점이다. 과연 경우에 대한 합의된 인식은 있는 것인지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전두환과 검찰의 경우없는 셈법

경우가 없는 일을 몇가지 적어보자. 반란 수괴인 전두환은 80년 광주에서 게엄군이 헬기사격을 하여 민간인을 학살한 사실을 부정하고 간첩(북한군)이 개입했다는 주장을 해서 다시 재판을 받고 있다. 건강이 안좋다면서도 골프를 치고 수하들과 만찬을 즐기던 자가 이제는 재판 출석도 멋대로 하겠다고 한다. 추징금 2천억원 중 8할 가까이를 내지 않고 통장에 달랑 29만원 뿐이라던 그는 취재중인 기자에게 돈을 대신 내달라고 했다. 무기징역을 사면해줬더니 돈보따리를 내놓으란다. 몰염치다. 자신이 마땅히 치러야 할 값은 뭉개고 자기 몫만 알뜰하게 챙기는 철면피의 모습에 다들 실망도 화도 아닌 한숨이다. 어찌하여 정치권, 정부, 언론은 이 살인마에게 경우(도리)를 가혹하게 묻지 않는 것일까?

어제 검찰은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을 직권남용과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기소했다. 그가 반부패부장이었던 2019년 김학의씨의 출금금지 과정을 수원지검이 조사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행사했댄다. 김학의 성접대가 담긴 고화질 동영상을 보고도 두 번씩이나 무혐의로 사건을 덮었던 검찰이다. 대선배에 대한 충정으로 똘똘 뭉쳐 김씨의 공소시효를 기어코 완성하고 말았다. 이런 검찰이 외국으로 도망치려는 김씨의 출국을 막은 절차가 맞니 틀리니 하고 있다. 한마디로 경우없는 짓이다. 검찰은 먼저 김학의 무혐의 처분에 관련된 모든 검사들을 잡아들인 뒤 법조항과 절차를 하나하나 따져 정밀하게 발라냈어야 했다. 그런 연후에 출국금지가 법에 맞는지를 따졌어야 했다. 하도 검찰발 보도가 요란하니 이젠 이지검장이 마치 김학의 수사를 못하게 해서 기소되었거나, 검사가 아니라 패륜를 저지르고도 반성하지 않는 잡범이라는 착각이 들 정도다. 이런 기세라면 이씨는 이미 최소한 무기징역이다. 만일 경우밝은 검사나 공수처가 이씨를 기소한 검사들을 기소절차에 문제가 있다고 입건하고, 수십차례 불러다 조사하고 기소하면 어떻게 될까? 털어서 먼지 안나는 검사가 있을까? 마땅히 치러야 할 값을 치르지 않고 제 몫만 챙기려다 곤욕을 겪게 생겼다.

경우없는 납세와 사면

지난 2년 간 집(아파트)값이 폭등했다. 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쏟아냈지만 집값을 잡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책의 효과를 면밀하게 분석하지 않고 모든 것이 잘못되었다고 몰아붙여서는 안된다. 부동산은 긴 시간을 살펴야 하며, 복잡한 인과관계가 얽혀있으며, 정보(돈)를 쥔 자들에게 휘둘리기 쉽다. 선거 결과에 놀라 마구잡이로 던지고 흔들면 일을 그르치기 십상이다.

재미있는 것은 정부정책을 비난하는 자들이 내놓는 대안이다. 보유세를 내리고, 거래세를 줄이고, 대출규제를 풀자는 것이다. 집 한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종부세와 대출규제로 고통받고 있다고 한다. 세금폭탄이란다. 경우없는 요설이다. 침소봉대나 조작에 가깝다. 전국민의 1%이 종부세 대상인데, 그 절반이 100만원을 낸다. 종부세를 내리고 양도세를 줄여주면 누가 좋을 것인가? 1%의 부자와 다주택자들만 환호성을 지를 것이다. 특히 갭투자로 숨넘어가기 직전인 자들에게는 신의 은총이다. 마땅히 내야 할 양도세를 내지 않고 집을 팔아 큰 차익을 챙기게 될 테니 말이다.

집값이 올랐으면 그만큼 세금을 더 내는 것이 당연하다. 경우에 맞는 일이다. 세입자에게는 전세금대출을 받으라 하면서 왜 집부자들은 백만원이 없어 죽는다면서도 주택담보대출은 안받는가? 말은 많지만 결국은 세금내기 싫다는 소리다. 다주택자를 규제하고 집값을 안정시키는 정책을 끝없이 흔드는 이유가 있다. 시장을 교란하여 집값을 올려놓고 불로소득을 날로 먹으려는 심보다. 어리석은 “영끌”을 부추기며 정부의 헛발질을 유도하는 까닭이다.

삼성도 경우가 없는 것은 매한가지다. 이재용씨가 구속된 뒤 반도체가 어쩌니 코로나 백신이 어쩌니 하면서 사면을 거론한다. 수구세력도 거든다. 뇌물 86억원에 2년 6개월이면 헐값이건만 이마저도 제대로 치르지 못하겠다는 것 아닌가. 이런 셈법으로 장사하면 망한다. 전두환 하나로도 부족한가? 또 이건희씨가 사망한 뒤 12조원의 상속세를 어찌 낼 지 언론이 걱정한다. 정해진 상속세를 내는 것 뿐인데, 삼성이 미술품을 기부한다며 호들갑이다. 당연한 이씨의 납세가 영웅담이 된다. 그럼 이참에 몇 백조라도 화끈하게 쏘든가. 그래야 감옥에서 꺼내서 국민훈장이라도 안겨줄 것 아닌가… 呵呵. 제발이지 돈질·힘질도 좀 경우있게 하면 안되겠니?

인용하기: 박헌명. 2021. 경우없는 셈법과 납세와 사면. <최소주의행정학> 6(5): 1.

“MB없다”와 시장선거에 나선 고대생

이번 재보궐선거에서 여당이 고전하고 있다. 서울과 부산 시장이 성추문으로 물러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LH공사 직원의 투기의혹에서 시작된 부동산 문제가 일파만파로 퍼지며 선거를 뒤덮고 있다. 공약은 눈에 띄지 않고 여야 세력의 힘겨루기만 보인다.

지난 주부터 광역시장 후보의 언행을 지켜보면서 많은 생각이 든다. 사실관계가 어떠한지를 시시콜콜 따지고 싶지는 않다. 어차피 선거가 끝난 뒤 재판으로 가려질 것같다. 하필 유력한 후보 세 명이 고대를 졸업했다는 점이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박형준·오세훈에게 이명박이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MB 없다”

고대와 연대의 응원전에서 벌어졌다는 우스개소리다.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피겨스케이트 금메달을 목에 건 김연아가 국민영웅이 되었다. 이명박 정권 시절이다. 고대쪽에서 “우리는 연아 있다”라며 뻐기자, 연대쪽에서는 “우리는 MB 없다”라고 응수했댄다. 연아가 우아하게 벌어놓은 것을 명박이가 까먹는 것으로도 부족해 빚더미를 잔뜩 남겨놓은 셈이다.

“DAS는 누구겁니까?”의 주인공 이명박 은 2007년 한나라당 경선에서 “도곡동 땅이 어떻다고요? BBK 의혹이 어떻다고요? 새빨간 거짓말입니다”라고 했고, “온갖 음해에 시달렸습니다.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것 아시죠?”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11년 뒤 그 말이 새빨간 거짓말이 되어 이씨를 감옥에 쳐넣었다. 기업인으로서 회사를 망치고, 4대강 사업, 자원외교, 공작정치 등으로 나라를 망치고, 그리고 아귀餓鬼처럼 사리사욕만 탐하다 인간을 망쳤다. 이씨에게 빌붙어 호의호식했던 이상득, 최시중, 원세훈 등이 감옥으로 끌려갔고, 김희중, 김백준, 김성우 등 측근들이 배신하고 그의 목을 졸랐다. 이씨에게 줄을 댔던 “고대생”(천신일, 이학수, 이팔성, 김우룡, 김재철 등)들이 줄줄이 검찰에 불려갔다. 모교의 얼굴에 똥칠을 했다. 선량한 교우校友들이 공공의 적으로 몰려 악몽을 꾸었다.

박형준과 오세훈과 이명박

박형준과 오세훈은 이명박의 판박이다. 고대 졸업생이면서 끊임없이 부와 잇속을 탐하다 꼬리를 잡혔다. 도곡동 땅과 엘시티 아파트를 비롯한 여러가지 부동산 의혹을 받았다. 부적절한 공직자의 처신으로 도마에 올랐다. 거짓말로 세상을 속이려다 낭패를 보게 생겼다. 이명박 정권에서 박씨는 청와대 민정수석을, 오씨는 서울시장을 맡았다. 박씨가 이씨를 대통령으로, 오씨를 서울시장으로 적극적으로 밀었다. 이씨는 1964년 한일국교정상화 반대와 “샐러리맨 신화”로, 박씨는 학생운동권과 민중당과 동아대 교수로, 오씨는 민변과 환경운동연합 경력으로 화려하게 등장했지만 모두 수구세력의 기수로 변신하였다. <이솝우화>에서 악한 강자는 위장하고 교묘한 말을 하여 약자를 속인다고 했다(2001: 138-139).

박씨는 민정수석시절 국정원의 민간인 사찰문건을 본적도 들은 적도 없다고 했다. 지시한 적도 관여한 적도 없다고 했다. 이미 국정원의 사찰문서 배포처에 민정수석이 들어있음이 확인된 상황이다. JTBC의 썰전 231회(2017년 8월)에 출연한 박씨는 국정원이 민간인 댓글부대를 운용한 사실을 알았냐는 유시민씨의 질문에 대해 당시 국정원의 사이버 심리전단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다고 했다. [알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단두대로 가겠다고 못을 박았다.

오씨도 배우자의 도곡동 토지에 대해 존재도 위치도 몰랐다고 했다. 개발제한구역 해제와 토지보상은 주택국장이 결정했다는 것이다. 토지측량을 나온 국토정보공사 팀장, 경작인, 식당 주인 모두 틀림없이 오씨가 왔다고 증언했다. 당시 유명인사였던 오씨가 백바지에 선글라스를 쓰고 온 것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오씨는 입회사실을 부정하면서도 측량문서에 서명한 사람, 경작인의 계약 요구, 입회했다는 처남의 행적 등을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이 이 일에 관여했다는 증언이 나오면 후보를 사퇴하고, 땅으로 이익을 봤다면 정계를 은퇴하겠다고 배수진을 쳤다.

이명박씨도 2000년 자신이 BBK를 설립했다고 말한 동영상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잡아뗐다. 2007년 대선 당시 자신이 BBK 소유주라면, 주가조작에 가담했다면 대통령이 되어서라도 무한책임을 지겠다고 했다. 이씨와 박씨와 오씨의 화법이 똑같다. 사실과 증거로 다투는 것이 아니라 벼랑 끝 패를 들이밀어 위기를 모면하려는 술책이다. BBK관련 의혹이 드러나면 어차피 대통령 노릇을 못하는 것이고, 민간인 사찰을 알았다면 감옥에 가야 할 것이고, 도곡동 땅을 알았다면 시장자리는 물건너 간 것이 아닌가. 손해볼 것이 전혀 없는 일을 마치 양보라도 하듯이 교묘하게 말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일단은 목적을 달성해놓고 보려는 사기꾼의 수법이다.

시장선거에 나선 고대생의 궁상

소정 선생님은 종종 <논어論語> 학이편學而篇에 나오는 교언영색선의인巧言令色鮮矣仁을 언급하시면서 말을 교묘하게 하고 생김새만 번지르르한 사람을 경계하셨다. 자신이 불리할 때는 숨어 있다가 무섭지 않을 때 기어나와서 이말 저말을 늘어놓으면서 잇속을 챙기는 이를 싫어하셨다. 남자가 성실하고 경우가 바르기보다는 친절하기만 하면 위선자일 뿐 좋은 배필이 되지 못한다고 했다(2001: 103).

불행하게도 이씨(경영학), 박씨(사회학), 오씨(법학) 모두 위장과 변신에 능한 “고대생”인 것같다. 사실을 분명히 밝히지 않고, 말을 바꾸거나 교묘한 말로 헷갈리게 한다. 기억 앞에서 겸손하라니… 마음 속에 땅이 자리하지 않다니… 본성이 드러날까 전전긍긍하는 속내다. 명명백백한 증거와 증언이 나온다 해도 절대로 인정하지 않을 태세다. 또한 이씨(배우자), 박씨, 오씨 모두 인물이나 언변에서 빠지지 않는다. 특히 박씨는 학식과 경험을 달변으로 그럴듯하게 풀어내는 솜씨가 있다. 사람을 속이고 말을 바꾸어 약속을 어기면서도 당당할 수 있는 재주다. 꾀병으로라도 감옥에서 벗어나려 용쓰고, 아이들 무상급식을 복불복에 걸고, 호화 아파트 의혹을 개인신상이라며 덮으려는 태도에서 고대생다운 당당함이 없다.

부산시장 후보로 나선 김영춘(정치외교학)은 세 사람과 반대편에 서 있다. 학생운동이나 진보를 배신하지 않고 소신을 지켜왔다. 눌변에 가까와 토론에서 박씨에게 많이 밀리는 모양새다. 하지만 서울에 아파트 한 채를 가진 것이 비난받을 정도로 특별한 비리는 없어 보인다. 해양수산부 장관을 역임하여 좋은 평가를 받았으나 이번 선거에서 예기치 못한 부동산 바람에 휩쓸리고 있다. 친절하지는 못해도 성실하고 경우 바른 고대생이 우직하게 고난을 헤쳐가고 있다.

굽은 것을 펴는 고대생이길

소정선생님은 “눌린 자들 쳐들기에 굽은 것 펴기에 쓰리로다 부리리라”라는 고대의 옛교가를 더 좋아하셨다. 누가 바른 것을 눌러 굽힌 자이고 누가 굽은 것을 펼 자인가. 주택국장이 전결했다고 둘러대고 민정수석실로 보내진 사찰문건을 알지 못한다는 자가 굽은 것을 펼 수 있을까. 또다시 교우들이 시민들 앞에서 고개를 들고 다니지 못하는 수모를 당하지 않았으면 한다.

악한 강자는 백성에게 아첨이나 구걸을 해서라도 권력을 얻은 뒤 백성을 해친다 (2001: 139). 사기꾼의 눈속임·말속임에 넘어가 곡간열쇠를 맡기는 우를 되풀이해선 안된다. 분위기에 휘둘리지 말고 사실과 거짓말을 냉철하게 따져 심판해야 한다. 

인용하기: 박헌명. 2021. “MB없다”와 시장선거에 나선 고대생. <최소주의행정학> 6(4): 2.

부동산으로 흥한 선거 부동산으로 망하나

4월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여야가 사생결단이다. 문재인 정부를 전체주의 독재로 낙인찍은 수구기득권 세력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다가 드디어 LH공사 비리를 계기로 파상공세를 시작했다. 예민한 부동산 문제를 물고 늘어지면서 선거판을 휩쓸고 있다. 한 쪽에서는 보유세가 별것 아니라며 “영끌”이니 “패닉바잉”을 부추기면서 다른 쪽에서는 세금폭탄이라며 사회주의를 운운하는 자들이다. 어쩌면 이번 선거는 부동산에서 시작해서 부동산으로 끝날 것같다. 부동산으로 흥한 선거 부동산으로 망하는가.

공직 후보의 무책임한 말잔치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오세훈씨는 부인이 소유했던 도곡동 토지에 대해 위치도 존재도 몰랐다고 했다. 수억대 토지보상을 받았으면서도 손해를 봤댄다. 이명박 정권에서 개발제한구역을 해제하고 보금자리주택지구를 지정한 것은 주택국장 전결사항이라 자신은 알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전결 얘기를 듣자마자 실소가 나왔다. 행정절차상 전결사항이라 해도 시장이 몰랐다고 말하다니… 23만평이나 되는 택지에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뒤얽힌 사안이 아닌가. 부서의 주요한 일은 사후에라도 상급자에게 보고하고 설명하는 것은 상식이다. 국장이 시장의 권위를 빌어 일을 하지만 그 책임은 시장의 몫이다. 전결을 했든 안했든 시장이 꼼꼼하게 살펴야 하고 필요하면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전결사항을 정말 몰랐다면 한마디로 무능하고 무책임한 상급자다. 어찌 그리 천연덕스럽게 몰랐다고 말할 수 있는지… 다 주택국장의 책임이니 나에게 묻지 말라는 소리인가?

땅의 위치도 존재도 몰랐다는 말은 거짓임이 분명하다. 오씨는 국회의원과 서울시장에 당선된 뒤 도곡동 110번지와 106번지를 배우자의 재산으로 신고했다. 2005년 택지개발용역이 시작되기 직전 오씨가 백바지에 선글라스를 쓰고 와서 처가 식구들과 토지측량을 입회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토지를 측량한 팀장과 직접 말뚝을 박았다는 경작인이다. 그럼에도 오씨는 토지측량 보고서에 장인이 서명했으니 자신이 현장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고 했다. 또 “기억 앞에서는 겸손해야 한다”며 어물쩍 뭉개고 있다. 누군가 자신이 압력을 가했다고 나서면 바로 후보를 사퇴한댄다. 땅으로 이익을 봤다면 정계를 은퇴한댄다. 자신의 양심문제에 웬 조건을 거는가. 자기관리와 자기책임에 게으른 사람이다.

부산시장 후보로 나선 박형준씨도 이명박 정권에서 4대강 사업을 반대한 사람들을 사찰한 국정원의 문서를 받지 못했다고 했다. 문서에 청와대 홍보기획관의 요청사항이라고 적혀있고, 14건은 배포선에 민정수석을 포함하고 있었다. 당시 홍보기획관이었고 민정수석이었던 박씨는 불법사찰을 알지도 듣지도 못했다고 했다. 배포선에 넣으면 우편물처럼 가게 되어있다는 임태희 전비서실장의 발언이 무색해진다.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원세훈의 국정원이 제멋대로 문서를 생산해서 아무렇게나 배포했다는 것인가? 민정수석이면 보고를 받지 못했다 해도 입소문이 난 일을 잘 살펴서 잘못된 일을 바로잡았어야 했다.

배우자와 그 딸이 홍익대학교를 찾아가 울면서 미대입학을 청탁했고, 민정수석이던 박씨가 외압을 넣어 입시비리 검찰수사를 덮었다는 의혹도 제기되었다. 박씨는 딸이 당시 런던예술대학을 다녔는데, 입학시험을 보지도 않았고 홍대 근처에도 안갔다고 해명했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실기시험 점수를 올려주었다고 고백한 김승연 전 미대교수를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고발하였다. 어느 쪽이 사실인지 쉽게 밝힐 수 있는 일을 논박하는 모습이 우습다. 홍대가 박씨 딸이 시험을 쳤는지를 밝히면 되는 일 아닌가? 진실을 알고 있는 학교나 검찰에서 침묵하고 있으니 난감하다.

엘시티 아파트와 동경 아파트

박씨 부인 명의로 된 해운대 엘시티 아파트도 공방중이다. 2005년 배우자의 아들과 딸이 하필 분양계약 첫날에 아래위층(17-18층) 분양권을 구했댄다. 자녀가 모친과 친분이 있던 중개인을 우연히 만났고 마침 분양권을 팔려는 사람을 만나서 복비도 주지 않고 계약서를 썼댄다. 참으로 기묘한 우연이고, 112평 아파트를 구입한 자녀의 재력이 놀랍다. 지난해 부인이 아들에게 웃돈 1억원을 주고 아파트를 구입했는데, 1년만에 가격이 20억에서 35억으로 올랐댄다. 그런데 엘씨티에 18억원 조형물을 납품한 회사의 대표이사가 박씨의 아들이라고 한다. 부산의 복마전을 상징하는 엘시티처럼 박씨의 아파트 의혹은 쉽게 해소될 것같지 않다.

이에 수구야당은 부산시장 후보 김영춘씨가 서울에 아파트를 가지고 있고, 서울시장 후보 박영선씨의 남편이 동경에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다며 군불을 지폈다. 박씨가 BBK로 이명박씨를 집요하게 몰아붙인 탓에 남편은 일본으로 사실상 쫓겨갔고, 지난 2월 아파트를 처분했다고 해명했다. 10억원정도의 20평 아파트란다. 과연 얼마나 많은 차액을 벌었을까? 디플레이션을 걱정하는 일본에서 가격상승을 노리고 아파트에 투자했다면 어리석다. 휴양지에서도 비싼 공과금을 버티지 못해 공짜로 부동산회사에 넘기는 판이다. 박씨 남편이 동경의 부동산 물정에 밝았다면, 큰 수익도 없이 번거로운 매매보다 임대를 선택했을 것이다. 게다가 동경에서 20평이면 평균치일 뿐 엘시티의 호화로움과는 거리가 멀다.

깨어있는 시민의 지혜와 실천이 필요하다

여론조사는 민주당 후보가 서울과 부산에서 야당 후보에게 두 자리수 차이로 밀리는 것으로 나왔다. 성난 민심의 반영이라지만 과하다. 대다수 방송과 신문은 수구세력에 기울어져 있다. LH공사를 비롯한 공무원의 부동산 투기 보도는 넘치지만 유력한 야당 후보에게 쏟아진 부동산 의혹은 가뭄에 콩나듯 하다. 후보 단일화와 상호 난타전을 전할 뿐 이성과 상식에 근거한 분석과 토론은 찾아보기 어렵다. 우격다짐같은 “백날토론”을 할 뿐이다. 사실관계를 묻는 질문은 “네가티브”라고 깎아내린다. 수구기득권의 힘이 선거판을 움직이고 있다. 만일 오세훈이나 박형준이 조국이나 추미애였다면 벌써 3족이 난도질을 당했을 것이다. 깨어있는 시민의 냉철한 판단과 굳건한 믿음과 불굴의 용기가 필요한 때다. 

인용하기: 박헌명. 2021. 부동산으로 흥한 선거 부동산으로 망하나. <최소주의행정학> 6(4): 1.